시달릴 곤(囗-4) 말 이을 이(而-0) 배울 학(子-13) 이것 지(丿-3)
증삼은 스승인 공자로부터 “參也魯”(삼야노) 즉 “삼은 미련하다”라는 말을 들었던 제자다. 후대 성리학자들이 증삼을 크게 높이고 떠받드는 바람에 많은 사람이 증삼이 대단한 제자였고 학자인 듯이 여기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그는 참으로 미련한 사람이었고, ‘논어’ 등의 기록으로 보자면 ‘막힌 사람’이었다. 삶은 호박이 잘 익지 않았다고 아내를 내쫓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는 것도 그 때문이리라.
그러나 “仁以爲己任, 不亦重乎? 死而後已, 不亦遠乎?”(인이위기임, 불역중호? 사이후이, 불역원호?) 곧 “어짊을 제 일로 삼으니, 또한 무겁지 않은가? 죽은 뒤에야 끝나니, 또한 멀지 않은가?”라고 한 말을 보면, 일생을 불같이 뜨겁게 산 인물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비록 미련하기는 했어도 그것을 한시도 잊지 않으면서 도를 향해 나아갔다는 사실은 높이 살 만하지 않은가. 어쩌면 공자 제자 가운데서 증삼이야말로 우리네 張三李四(장삼이사)들과 가장 비슷하고 가까운 인물이 아닐까?
공자가 말했다. “生而知之者, 上也; 學而知之者, 次也; 困而學之, 又其次也”(생이지지자, 상야; 학이지지자, 차야; 곤이학지, 우기차야) “나면서부터 아는 자는 으뜸이요, 배워서 아는 자는 버금이며, 시달려서야 배우는 자는 다시 그 버금이다.”
나면서부터 아는 자는 이른바 천재를 가리킨다. 한 시대에 한 사람이나 백 년에 한둘 정도 있을까 말까 한 그런 천재. 그러나 이런 말을 한 위대한 사상가요 교육자이며 유교의 開祖(개조)인 공자 자신은 ‘생이지지자’가 아니라고 스스로 말했다.
‘논어’에 나온다. “我非生而知之者. 好古, 敏以求之者也.”(아비생이지지자. 호고, 민이구지자야) “나는 나면서부터 아는 자가 아니었다. 옛것을 좋아하여 재바르게 구하는 사람일 뿐.”
공자 스스로 ‘생이지지자’가 아니라 했다면 ‘學而知之者(학이지지자)’였다는 말인데, 그런 이에게서 미련하다는 말을 들었던 증삼은 대체 어떤 수준이었을까? 공자가 말한 ‘困而學之者(곤이학지자)’였으리라. 우리 범부들은 그런 증삼들이 아닐까?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