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울 학(子-13)것자(老-5)날마다 일(日-0)더할 익(皿-5)
사람은 누구나 바라는 것을 얻고 이루며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 게다가 그 행복을 오래도록 변함이 없이 누리고 싶어 한다. 그저 바라는 정도가 아니라 간절하게 바란다. 사막을 헤매는 자가 오아시스를 바라는 것과 같은 渴望(갈망)을 누구나 갖고 있다. 그럼에도 왜 그 바람을 이루는 이가 드물까? 도리어 바라지 않던 결말에 이르거나 끝장을 마주하는 데서 그치는 까닭은 무엇일까? 노자가 ‘죽간본’ 21장에서 강조한 ‘重積德(중적덕)’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거듭 덕을 쌓을 수 있을까? 노자는 ‘죽간본’ 22장에서 그 요체를 제시했다. “學者日益, 爲道者日損. 損之或損, 以至亡爲也, 亡爲而亡不爲.”(학자일익, 위도자일손. 손지혹손, 이지무위야, 무위이무불위) “배움은 날마다 더하는 일이고, 도를 닦음은 날마다 더는 일이다. 덜고 또 덜어야만 함이 없음에 이르니, 그러면 함이 없어도 되지 않는 일이 없다.”
짧은 글이지만, 따지고 살펴야 할 대목이 적지 않다. 먼저 ‘學(학)’ 곧 ‘배움’이 걸린다. 대개 노자는 道(도)를 중시하고, 그 도의 핵심은 ‘無爲(무위)’라고 한다. 위 글에서도 그대로 드러나 있다. 반면에 ‘배움’은 ‘도’로 나아가는 데 걸림돌이 되는 것으로 대부분 파악한다. 심지어 ‘배움’을 부정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배움을 무위가 아니라 有爲(유위)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나중에 살펴볼 ‘죽간본’ 23장 및 통행본 ‘도덕경’ 20장에 “絶學無憂(절학무우)” 곧 “배움을 끊어야 걱정이 없다”는 대목이 나오니, 더 말할 것이 무엇 있으랴. 무엇보다도 道家(도가)의 반대편에 있다고 여겨지는 儒家(유가)에서 강조하고 중시하는 것이 ‘學(학)’이니 더욱더 꺼려지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나 그렇게 단순하게 이해해서는 안 된다. “學者日益”(학자일익) 곧 “배움은 날마다 더하는 일이다”는 구절에는 노자의 ‘가치 판단’이 전혀 개입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즉, 사실을 그대로 표현했다는 말이다. 그러니 사실 그대로 읽어야 마땅하다.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