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할 설(言-7)것자(老-5)통할 태(儿-5)그것 지(丿-3)
새해 들어 한동안 “만나는 봤느냐?”는 말이 회자되었다. 어느 종편의 ‘신년토론’ 프로에서 토론자 가운데 한 사람이 자신의 논거로 내세운 말이었는데, 대부분 사람이 논거로 부적절할 뿐만 아니라 論客(논객)으로 알려진 이의 입에서 나온 말치고는 너무 터무니없다고 여겨서 비웃느라고 입방아를 찧은 것이다. 왜 그 논객은 그렇게 억지스런 발언을 했을까? 참으로 그런 발언에도 설득될 사람이 있다고 여긴 것일까?
‘여씨춘추’ ‘孟夏紀(맹하기)’에 나온다. “凡說者, 兌之也, 非說之也. 今世之說者, 多弗能兌, 而反說之. 夫弗能兌而反說, 是拯溺而硾之以石也, 是救病而飮之以菫也, 使世益亂.”(범설자, 태지야, 비설지야. 금세지설자, 다불능태, 이반설지. 부불능태이반설, 시증익이추지이석야, 시구병이음지이근야, 사세익란) “무릇 설득이라는 것은 이치를 꿰어 듣게 하는 것이지 억지를 부리는 것이 아니다. 지금 세상에서 설득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치를 꿰어 듣게 하지 못하고 도리어 억지를 부리려 한다. 이치를 꿰지 못하면서 도리어 억지를 부린다면, 이는 물에 빠진 사람을 건지겠다고 하면서 돌을 매달아 가라앉게 하고 병을 고친다면서 독초를 먹이는 것과 같아서 세상을 더욱 어지럽게 만든다.”
이치를 꿰고 논리를 갖추었으며 알아듣기 쉽게 말했음에도 설득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것은 듣는 이가 마음을 닫아버린 상태에서 또는 특정한 방향으로 생각이 치우친 상태에서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대개는 이치에 맞고 논리가 정연한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한다. 논객이라면 그런 이치쯤은 충분히 알고 있을 터인데, 어찌하여 터무니없는 발언, 억지 주장을 편 것일까? 첫째는 배우지 않아서다.
노자는 “學者日益”(학자일익) 곧 “배움은 날마다 더하는 일이다”고 말했다. 무엇을 더하는 것일까? 정보와 지식이다. 설득을 위해서는 타당한 정보를 얻고 적절한 지식을 갖춰야 한다. 풍부하게 얻고 도탑게 갖출수록 좋다. 그래야 철옹성 같은 상대도 설득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