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을 다(夕-3)들을 문(耳-8)제쳐둘 궐(門-10)의심스러울 의(疋-9)
현대 사회를 정보화 사회라고 한다. 이는 기술적 측면에서 정보의 양과 질이 풍부하게 생산되고 전달된다는 것, 또 그러한 정보가 경제적 가치를 가진다는 것, 그러한 정보의 생산과 처리, 전달, 축적 따위가 효율적으로 이루어지게 하는 기기와 네트워크가 급격하게 발달하고 확산되며 보급된다는 것 때문이다. 아이부터 노인까지 다 들고 있는 스마트폰은 정보화 사회임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런데 정보와 지식은 인류의 문명에서 늘 주요하고 강력한 힘으로 작용했다. 일찌감치 관료 사회가 형성된 동아시아에서는 정보와 지식의 습득이 곧 지위 상승과 권력 확보로 이어졌다. 중국과 한국, 베트남에서 시행된 과거제는 지식이 곧 신분이요 권력임을 단적으로 보여준 제도였다.
공자가 활동했던 춘추시대는 신분 질서가 무너지면서 귀족의 전유물이었던 지식과 교양이 모든 인민에게 개방된 시대였고, 이어진 전국시대는 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참신하고 심오한 다양한 지식이 생산되고 전파된 시대였다. 2000년 넘게 동아시아인의 사유와 삶에 영향을 끼친 지식이 이때 나왔으니, 춘추전국시대는 가히 지적 혁명의 시대였다.
그런 지적 혁명을 이끌었던 공자였으니, 제자들이 벼슬 구하는 법을 배우려 한 것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 다만, 정쟁이 끊이지 않고 권모와 술수가 횡행하는 시절이어서 벼슬길에 나아가더라도 무탈할 것이라는 보장이 없던 시대였다. 그러니 제대로 배워야 했고, 배웠더라도 늘 언행을 삼가지 않을 수 없었다. 공자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가르쳤다. “多聞闕疑, 愼言其餘, 則寡尤; 多見闕殆, 愼行其餘, 則寡悔. 言寡尤, 行寡悔, 祿在其中矣.”(다문궐의, 신언기여, 즉과우; 다견궐태, 신행기여, 즉과히. 언과우, 행과회, 녹재기중의) “많이 듣되 의심나는 것은 제쳐두고 그 나머지만을 삼가면서 말한다면 허물이 적을 것이고, 많이 보되 위태로운 것은 제쳐두고 그 나머지만을 삼가면서 행한다면 뉘우칠 일이 적을 것이다. 말하되 허물이 적고 행하되 뉘우칠 일이 적으면, 녹봉은 그 안에 있다.”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