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잡도리할 약(糸-3)그것 지(丿-3)써이(人-3)예의 례(示-13)
노자는 “爲道者日損”(위도자일손) 곧 “도를 닦음은 날마다 더는 일이다”고 말했다. 더는 것은 무엇인가? 대개는 損(손)을 부정적으로 이해한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의 감정이나 심리는 ‘益(익)’ 곧 보탬이 되는 것을 이롭게 여겨 좋아하지, 덜어내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 장사꾼이 “남는 게 없다”고 말하면, 대개 거짓말이라 여긴다. 손해 본다는 말도 아니고 고작 남는 게 없다는 말임에도 거짓으로 여기는 게 인정이요 심리다. 그러니 ‘덜고 줄이는 것’뿐인 ‘損(손)’에 ‘해롭다’는 뜻의 ‘害(해)’를 덧붙여 ‘손해’라 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나 더해서 좋은 것도 있지만, 덜어서 좋은 것도 있다. 더해야 하는 것도 있고, 덜어야 하는 것도 있다. 무릇 배움이란 더해야 하는 것이고, 道(도)란 덜어야 깨칠 수 있는 것이다. 노자만 이렇게 말한 게 아니다. 공자조차 이렇게 말했다. ‘논어’ ‘雍也(옹야)’에 나온다. “君子, 博學於文, 約之以禮, 亦可以不畔矣夫!”(군자, 학박어문, 약지이례, 역가이불반의부!) “군자가 널리 문화를 배우고 예의로써 잡도리하면, 이치에서 벗어나지 않을 수 있으리라!”
춘추전국시대에 유가를 비판하는 학파나 사상가들이 트집 잡은 게 예의다. 천지개벽이나 다름이 없는 변화가 천하를 휩쓸고 있는 판국에 옛날의 예법을 끌어와서 운운한다면, 시쳇말로 ‘꼰대 짓’을 한다면, 그 누가 눈총을 주지 않겠는가. 그런데 그 빌미는 儒者(유자)들이 제공했다. 유자들 스스로 공자가 말한 바를 이해하지 못하고 예의를 형식으로 고정된 것,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으로 여긴 탓이다. 당시 사람들이나 후대 사람들이 예의를 번다하고 번거로운 규범이며 인정과 언행을 구속하는 것으로 여긴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위에서 공자가 한 말을 보라. 그런 뜻이 담겨 있는가? 군자의 공부는 널리 문화를 배우는 ‘博學於文(박학어문)’에서 시작하되 거기서 그치는 게 아니라 반드시 예의로써 잡도리하는 ‘約之以禮(약지이례)’를 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바로 이 ‘약지이례’가 ‘爲道者日損(위도자일손)’이다.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