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없을 무(火-8)쓸모 용(用-0)의 지(丿-3)시험 시(言-6)
노자의 “絶學亡憂(절학무우)” 곧 “배움을 끊어야 걱정이 없다”는 말은 배움 자체를 부정한 것이 아니다. 이 말은 배움, 배우고 익힘, 배워서 앎을 전제로 한 것이다. 처음부터 배우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배우되 배운 것을, 익힌 것을, 아는 것을 무조건 믿고 따르며 곧이곧대로 써먹으려 하지는 말라는 것이다. 우리가 배우고 안 것이 거짓이 아닌 사실일지라도 그것은 이미 결정된 일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우리가 새로 맞닥뜨리게 되는 상황이나 현상 사이에 간극이나 편차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또한 터득한 것이 보편적인 원리나 공리라 할지라도 실제 상황에서 적용할 때에는 다양하고 복잡하며 미묘한 변수들을 고려해야만 한다. 그런 점을 간과하고 무턱대고 배운 것, 아는 것을 적용하려다가는 틀어지거나 어긋나기 십상이다. 무슨 일을 하려고 정교하게 계산하고 치밀하게 계획을 세웠음에도 뜻대로 되지 않고 어그러져서 걱정과 번민에 휩싸이게 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조선 후기에 당시의 지배적인 학문이었던 성리학이 크나큰 걱정거리였음을 가장 깊이 인식했던 일파가 北學派(북학파)다. 북학파 학자들이 공통으로 문제 삼은 것 가운데 하나가 科擧(과거)였다. 朴齊家(박제가, 1750∼1805)는 자신의 글 ‘科擧論(과거론)’에서 이렇게 썼다. “用人之義, 果安在哉? 今試人以時藝. 其文, 上之不可充館閣備考問, 下之不可紀事實抒性情.”(용인지의, 과안재재? 금시인이시예. 기문, 상지불가충관각비고문, 하지불가기사실서성정) “인재를 기용한다는 과거의 뜻이 과연 어디에 있단 말인가? 지금의 과거는 한낱 문장의 기예를 겨뤄서 인재를 시험한다. 그런데 그 문장이란 것이 위로는 조정의 공문 작성에도 쓰지 못하고 임금의 자문에도 이용하지 못하며 아래로는 사실을 기록하거나 인간의 성정을 표현하지도 못한다.”
한마디로 과거가 필요하고 긴요한 사람을 뽑지 못하는 無用之試(무용지시)라는 말이다. 시쳇말로 ‘시험을 위한 시험’이 과거란 말인데, 이런 과거와 거의 다르지 않은 시험이 오늘날에도 있다. 考試(고시)다.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