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 편(片-0) 말언(言-0) 가를 절(手-4) 송사 옥(犬-11)
아이를 둘로 나누라고 한 솔로몬의 명령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기겁했을 것임은 不問可知(불문가지). 하물며 두 여인은 어떠했겠는가?
그런데 두 여인의 태도는 사뭇 달랐다. 한 여인은 “임금님! 산 아이를 저 여자에게 주시고, 제발 죽이지 말아주십시오!”라고 호소했다. 반면에 다른 여인은 “어차피 내 아이도 안 되고 네 아이도 안 될 테니, 나누어 갖자!”라고 말했다. 다들 알다시피, 솔로몬의 판결은 이러했다. “산 아이를 죽이지 말고, 양보한 여자에게 주라. 저 여자가 참된 어머니다!”
자, 이제 솔로몬의 판결은 나왔다. 難題(난제) 가운데서도 난제라 할 송사를 단번에 해결해버렸다. 그야말로 電光石火(전광석화)와 같은 一刀兩斷(일도양단)이다. 신하들과 백성은 모두 놀라면서도 두려웠을 것이다. 이렇게 거침이 없이 대담하게 또 지혜롭게 난제를 처리하다니. 솔로몬 이외에 누가 이렇게 할 수 있을까?
‘논어’ ‘顔淵(안연)’편에 공자가 子路(자로)를 두고 한 말이 떠오른다. “片言可以折獄者, 其由也與!”(편언가이절옥자, 기유야여!) “몇 마디 말만 듣고도 옥사를 처리할 수 있는 자, 그건 유(자로)일 것이다!” 자로는 배운 것이 몸에 익을 때까지 우직하게 실행하면서 한 걸음 한 걸음 더디게 나아간 사람으로, 어리석어 보일 정도로 곧고 굳세었다. 그 덕분에 편견이나 선입견이 없이 전체를 한눈에 보는 직관을 길렀다. 그 직관은 몇 마디 말만 듣고도 송사를 공명정대하게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그러면, 솔로몬은 어떻게 그런 판결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인가? 솔로몬은 親母(친모)를 가리려 하지 않았다. 그건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예 관점을 바꾸었다. “孰爲親母”(숙위친모) 곧 누가 친모냐 아니냐가 아니라 “孰可以養”(숙가이양) 곧 누가 아이를 잘 기를 수 있느냐 없느냐로 ‘참된 어머니’를 가리려 했다. 여인 곧 어미의 입장을 버리고, ‘아기의 처지’에서 사안을 본 것이다. 절묘하지 않은가? 그러나 그 절묘함은 열린 눈과 마음이 찾아낸 中(중) 곧 알맞음일 뿐이다.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