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할 호(女-3) 미워할 오(心-8) 반드시 필(心-1) 살필 찰(宀-11)
‘논어’ ‘衛靈公(위령공)’에 나온다. “衆惡之, 必察焉; 衆好之, 必察焉.”(중오지, 필찰언; 중호지, 필찰언) “뭇사람이 미워해도 반드시 살펴보고, 뭇사람이 좋아해도 반드시 살펴보라.”
흔히 “사람은 이성적인 존재다”고 말한다. 인간에게는 다른 동물과 달리 이성이 있어 합리적으로 사유하고 판단하며 행동한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말인데, 사실 이 말은 사람이 매우 감정적이고 비이성적인 존재라는 역설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즉,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할 수 있으니 부디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이성적으로 말하고 행동하도록 애쓰라는 뜻이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앞의 말은 공자가 제자들에게 해준 것이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배움에 힘쓰는 자라 할지라도 여전히 이성적이기보다는 감정적이어서 냉철하게 판단하지 못하고 附和雷同(부화뇌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많이 배웠든 적게 배웠든 간에 평소에 냉철함과 엄정함을 지니고 있지 못하면, 뭇사람이 미워한다는 말을 들으면 나도 모르게 다수의 감정에 이끌려 나쁘게 보고, 뭇사람이 좋아한다는 말을 들으면 그 좋아함에 이끌려 좋게만 보게 된다.
이런 부화뇌동은 파시즘의 前兆(전조)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모든 是非(시비)를 틀어막고 반대되는 의견이나 견해를 이단으로 배척해버린다. 개성과 다양성이 들어설 자리를 용인하지 않으니, 대화와 토론을 통해 합의하는 일은 불가능해진다. 민주주의를 가로막는 장애로 이보다 더 위험한 것도 없다. 시시비비로 첨예하게 대립하며 격렬한 논쟁을 벌이는 일쯤이야 부화뇌동에 견줄 바 아니다.
공자는 이렇게도 말했다. “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군자화이불동, 소인동이불화) “군자는 어우러지지 똑같아지지 않고, 소인은 똑같아지지 어우러지지 않는다.” 和(화)는 제 주장을 펴면서 다른 주장을 허용하는 것이고, 同(동)은 제 주장만 내세우고 다른 주장을 배척하는 것이다. 어느 쪽이 민주주의의 길이겠는가? 군자와 소인 가운데 누가 시민이겠는가?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