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흘릴 체(水-7) 울읍(水-5) 적실 첨(水-5) 옷깃 금(衣-13)
장자는 “物無非彼, 物無非是”(물무비피, 물무비시) 곧 “사물에는 저것 아닌 게 없고, 사물에는 이것 아닌 게 없다”고 말했다. 이 말은 어떠한 사물이든 저것이기도 하고 이것이기도 하다는 뜻이니, 결국 어떠한 것도 고정된 것으로 특정할 수 없다는 말이며 단일하게 규정해서도 안 된다는 말이다. 게다가 그 사물은 진공 상태가 아닌 변화무쌍하고 복잡다단한 상황 속에 있으니, 한때의 판단과 규정이 어그러지는 데에는 하룻밤도 걸리지 않을 수 있다.
‘장자’ ‘제물론’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麗之姬, 艾封人之子也. 晉國之始得之也, 涕泣沾襟. 及其至於王所, 與王同筐牀, 食芻豢, 而後悔其泣也.”(여지희, 애봉인지자야. 진국지시득지야, 체읍첨금. 급기지어왕소, 여왕동광상, 식추환, 이후회기읍야) “여희는 애라는 곳의 국경지기 딸이었다. 진나라에서 그녀를 처음 데려갈 때에는 울고불고하여 옷깃이 흠뻑 젖을 정도였다. 헌데 왕의 처소에 이르러서 왕과 잠자리를 같이 하고 또 맛난 고기를 실컷 먹은 뒤에는 처음에 울었던 일을 후회했다.”
처음 낯선 땅으로 떠나던 여희는 울고불고했는데, 왕과 함께 먹고 자면서 새로운 즐거움에 빠지더니 운 것을 곧 후회했다. 이런 여희의 심사를 두고 비웃을 이가 있을지 모르겠으나, 여희만 그렇게 돌변하는 게 아니다. 대개 그보다 하찮은 일에서도 돌변하는 게 사람 마음 아니던가? 이는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것이 참으로 즐거운 것이 아닐 수 있고, 사람들이 그르다고 여기는 것이 정말로 그른 것이 아닐 수 있음을 일깨운다.
한 가지 더 있다. 즐거워하거나 싫어하는 마음만 변한 게 아니다. 그런 호오와 감정에 휘둘리는 여희의 처지 또한 달라졌다는 사실이다. 국경을 지키는 하급 관리의 딸로서 화려한 도성의 삶을 꿈조차 꾸지 않았던 여인, 변방 거친 삶에 익숙했던 여인이 갑작스레 왕의 부인이 된 것이다. 고속 신분 상승을 한 셈이다. 예나 이제나 절대다수가 바라는 바 아닌가? 그러면 이제 여희는 꽃길만 걸으면 되는가? 여희의 바람이야 그러하겠지만, 그 바람대로 될까?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