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로 상(目-4) 떨어질 거(厶-3) 얼마 기(幺-9) 얼마 하(人-5)
노자는 “唯與呵, 相去幾何?”(유여가, 상거기하?) 곧 “그렇다와 그러냐는 얼마나 떨어져 있나?”라고 말했다. 唯(유)는 긍정이고, 呵(가)는 부정에 가까운 의문이다. 이 둘은 어떤 사실이나 현상에 대한 판단에서 아주 상반되는 반응으로 간주되며, 사람들의 판단도 대체로 이 둘 가운데 하나로 기운다. 그리고 그렇게 판단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노자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그게 그거다”라고 넌지시 돌려 말한 것이다.
판단에는 사실 판단과 가치 판단이 있다. 사실은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나 현상, 있는 그대로의 것을 이른다. 이러한 사실은 단순할 수도 있고 복잡할 수도 있으며, 매우 다채롭게 변화하기도 한다. 아무리 다양한 관점으로 들여다보더라도 온전하게 파악하기 어렵고, 온갖 언사를 다 동원해도 오롯하게 묘사하지 못한다. 오죽하면 붓다가 되는 길이 ‘如實知見(여실지견)’ 곧 “있는 그대로 보고 있는 그대로 아는 것”이겠는가. 그뿐만 아니다. 붓다가 득도한 뒤 맨 처음에 가르침을 펼까 말까 주저했던 것도 자신의 깨달음을 도저히 표현할 길이 없어서였다. 노자도 그런 경험을 했던 듯하다. 비유와 상징을 동원해서 詩的(시적)으로 표현한 것을 보면 말이다.
그런데 우리 범부들은 迷妄(미망)에 사로잡혀 사물이나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볼 줄 모르고 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장님처럼 보고 귀머거리처럼 듣고서는 실상을 보고 진실을 들었다고 여기며 판단한다. 그 판단이라는 것도 고작 옳다와 그르다, 그렇다와 아니다 둘 가운데 하나다. 그걸 무슨 대단한 견해요 주장인 듯이 내세우며 악다구니하고 있으니, 어찌 노자가 걱정하지 않고 붓다가 슬퍼하지 않을 수 있으랴.
‘문자(文子)’의 ‘上德(상덕)’에서 말했다. “愚者言而智者擇. 見之明白, 處之如玉石; 見之黯晦, 必留其謀.”(우자언이지자택. 견지명백, 처지여옥석; 견지암회, 필류기모) “어리석은 자는 말을 앞세우고, 지혜로운 자는 말을 할지 말지 잘 가린다. 보아서 아주 뚜렷하면 옥과 돌을 가르듯이 하고, 보아서 어둑어둑하면 반드시 판단을 미룬다.”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