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막(艸-7) 죄다 진(皿-9) 믿을 신(人-7) 서경 서(日-6)
동아시아의 수많은 문인과 학자들은 ‘춘추’의 서술 태도를 두고 ‘대의명분을 밝히고 세우는 준엄한 필법’ 곧 ‘春秋筆法(춘추필법)’이라 일컬으며 본받으려 애썼다. 이 춘추필법은 불충한 신하들과 불효한 자식들인 亂臣賊子(난신적자)들을 두려워 떨게 만드는 필법이라 한다. 그러니 누가 감히 ‘춘추’를 비판할 수 있겠는가? 아니, 비판은커녕 의문조차 가질 이가 몇이나 되겠는가?
그러면 유교에서 경전처럼 떠받드는 ‘춘추’는 어떠한 결함도 없는 역사서인가? 사실 경전이라 생각하면서 읽더라도 어딘지 어색하고 거칠고 부적절한 부분, 의심스런 부분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경전’이라는 권위에 눌려서 별다른 의심을 더 하지 못하고 넘어가버리기 일쑤다. 과연 그렇게 읽고 넘어가는 것이 적절하고 타당한가? 권위에 눌려서 무작정 떠받드는 것은 공자도 맹자도 모두 단호하게 배척한 일 아닌가?
‘맹자’ ‘盡心下(진심하)’에 나온다. “盡信書, 則不如無書. 吾於武成, 取二三策而已矣.”(진신서, 즉불여무서. 오어무성, 취이삼책이이의) “‘尙書(상서)’를 곧이곧대로 믿는다면, ‘상서’가 없느니만 못하다. 나는 <무성>에서 두세 쪽만 취할 뿐이다.” ‘상서’는 곧 ‘書經(서경)’이며, ‘춘추’와 같이 유교의 경전으로 일컬어진다. 그렇다면 ‘상서’라는 경전의 내용은 아무런 의심이 없이 그대로 믿어야 하지 않겠는가? 맹자는 그래서는 안 된다고 아주 분명하게 말했다. 곧이곧대로 믿는 것은 도리어 그 존재를 무가치하게 만든다면서.
물론 곧이곧대로 믿지 않기란 쉽지 않다.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감정에 휘둘려서 뻔히 보이는 옳고 그름조차 헤아리지 못하는 게 사람인데, 떠받들며 본받아야 하는 경전이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면 의혹을 제기하는 일이 쉽겠는가? 그러나 그렇게 해야 한다. 그렇게 하려 애써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무리 배워도 참된 앎에 이르지 못한다. 그뿐이면 다행이다. 대개 눈과 귀가 점점 닫히면서 확신만 강해진다. 盲信(맹신)하고 固執(고집)한다.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