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갈 신(心-10)생각할 사(心-5)말 이을 이(而-0)밝을 명(日-4)가릴 변(辛-9)
‘사통’의 저자 유지기는 史官(사관)이었다.(<611> 등 참조) 그는 實錄(실록) 편찬에도 참여했는데, 실록은 당대 역사를 기록하는 일이므로 당시 사관은 오늘날 記者(기자)와 다를 바 없었다. 실록은 군주의 언행이 중심이 되므로 사관은 신중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그 사관도 관원 곧 공무원이어서 반드시 역사가의 자질이나 능력을 갖춘 이가 맡는 것은 아니었다. 이를테면, 유지기가 말한 ‘간파하는 식견’과 ‘명석한 정신’이 부족하거나 둘 가운데 하나도 없는 사람이 맡기도 한다. 그러면 그 실록은 부실해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러한 상황은 유지기 자신이 사관으로서 경험했던 일이다. 그가 사관 직책을 내던진 까닭도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없어서였다.
그렇다면, ‘간파하는 식견’과 ‘명석한 정신’은 아무나 갖출 수 없는 능력인가? 꼭 그렇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천재나 초인이라야 갖출 능력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어도 유가에서 말하는 君子(군자)의 길을 걸으며 삼가고 애써야 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중용’에 나온다. “博學之, 審問之, 愼思之, 明辨之, 篤行之.”(박학지, 심문지, 신사지, 명변지, 독행지) “널리 배우고 자세히 묻고 삼가 생각하고 환하게 가려내고 도탑게 행한다.”
기자라는 직업을 생각해보자. 기자는 본디 두루 다니며 정보를 캐고 사실을 확인하고 진실을 밝히는 일을 하니, 널리 배우는 일은 꽤 자연스럽게 되는 셈이다. 또 심층취재나 밀착취재를 하면서 다양한 사람, 특히 각 분야 내로라하는 전문가를 만나서는 줄곧 물으니, 자세히 묻는 일도 저절로 하는 셈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삼가 생각하고 환하게 가려내는 일은 기자라는 직업뿐 아니라 다른 어떤 직업에서도 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간파하는 식견’과 ‘명석한 정신’이 갖추어지며, 흔히 말하는 독창성도 여기서 나온다. 두루 배우고 자세히 물으며 그러모은 정보가 아무리 많더라도 삼가 생각하고 환하게 가려낼 줄 모르면, 實錄(실록)은 不實(부실)해지고 記事(기사)는 虛辭(허사)가 될 게 뻔하다.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