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길 은(阜-14)그기(八-6)이름 명(口-3)성성(女-5)

유교에서는 聖人(성인)을, 불교에서는 佛陀(불타, 붓다)를, 도교에서는 眞人(진인)을 각각 이상적 인간으로 제시한다. 그러나 그 모두 理想型(이상형, ideal type)이 결코 아니다. 성인, 불타, 진인 따위 말은 확실히 이상형을 나타내는 듯하다. 그렇지만 이상형은 관념으로 형상화한 것이어서 실재하는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공자, 석가모니, 노자나 장자 등이 실재하지 않는, 관념이 빚어낸 허구의 인물들인가?

오랜 세월 그릇된 관념이 덧칠을 거듭하면서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을 이상형으로 遁甲(둔갑)시켰지만, 성인도 불타도 진인도 현실 속에서 지향하고 실현할 수 있는 인간형일 뿐이다. 무엇보다도 그들이 공통으로 갖는 속성은 민주주의의 주체인 시민이 갖추어야 할 덕목이어서 주목된다. 성인은 知(지)와 仁(인)을, 불타는 지혜와 자비를, 진인은 無知(무지)와 無欲(무욕)을 각각 체화한 이들이다. 그 덕목들은 오늘날 시민이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지식과 이타심으로 대체할 수 있다.

혹시 진인의 無知(무지)를 지식과 반대되는 것으로 여길 이가 있을지 모르겠다. 노자와 장자가 말한 무지는 글자 그대로 ‘앎이 없음 또는 아는 것이 없음’을 뜻하는 無識(무식)을 가리키지 않는다. 잗다란 것에 얽매여 공정하게 또는 통짜로 보지 못하는 管見(관견), 偏見(편견), 先入見(선입견) 따위 ‘지식을 가장한 주장’이나 ‘억지스러운 논리’ 따위를 지식으로 아는 그릇된 인식을 버리라는 뜻으로 한 말이다.

‘文子(문자)’의 ‘道原(도원)’에 나온다. “眞人者, 知大己而小天下, 貴治身而賤治人, 不以物滑和, 不以欲亂情, 隱其名姓.”(진인자, 지대기이소천하, 귀치신이천치인, 불이물활화, 불이욕란정, 은기명성) “진인이란 크나큰 자신을 알고 천하를 작게 여기며, 제 몸을 다스리는 것을 귀하게 여기고 남을 다스리는 일을 천하게 여기며, 외물 따위로 조화로운 마음을 흐리지 않고 욕심으로 감정을 어지럽히지 않으며 자신의 이름을 숨긴다.” 코로나19와 싸우는 이름 모를 수많은 의료인, 봉사자들이 바로 진인 아닌가?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