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비 사(士-0)의 지(丿-3)위 상(一-2)가운데 중(丨-3)아래 하(一-2)
노자가 거론한 上士(상사)와 中士(중사), 下士(하사) 등은 오늘날 한국 군대의 부사관 계급과 동일하다. 그러나 본디 이 명칭은 중국 周(주) 왕조의 士人(사인)들을 가리키며, ‘六藝(육예)’라는 귀족의 교양 과목을 익혀서 실무에 종사했던 부류다. 지배층 가운데서 상층은 지위와 영지를 세습하던 卿(경)·大夫(대부)가 차지하고, 사인은 지배층에서 말단에 있으면서 오로지 자신의 능력으로 녹봉을 받아 살아갔던 존재다.
저 사인들의 존재가 오늘날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으랴 싶겠지만, 그들이 정치와 경제, 문화 등에서 한 역할과 의의는 흥미롭게도 오늘날 민주주의 국가에서 주권자인 市民(시민)과 흡사하다. 교육을 받고 자유와 행복을 누릴 권리가 있는 이 시대의 시민은 노자 시대의 사인과 거의 같은 처지에 있다. 춘추시대와 전국시대에는 피지배층에 속하던 천민조차 공자나 묵자, 맹자 같은 스승에게서 배워 교양과 능력을 갖추기만 하면 누구든지 버젓한 사인으로 대접받을 수 있었다.
공자는 “君子懷德, 小人懷土”(군자회덕, 소인회토) 즉 “군자는 덕을 붙좇고, 소인은 땅을 붙좇는다”고 말하는 등 사인을 군자와 소인으로 구별했고, 맹자는 “養其小者爲小人, 養其大者爲大人”(양기소자위소인, 양기대자위대인) 즉 “작은 것을 기르는 자는 소인이고, 큰 것을 기르는 자는 대인이다”고 하면서 대인과 소인으로 구별했다. 이런 구별은 기이한 일이 아니다. 왕이라고 다 같은 왕이 아니었고, 귀족이라고 다 같은 귀족이 아니었듯이 사인이라 해서 다 같은 사인일 수는 없었다.
노자도 사인을 다 같은 사인으로 보지 않았다. 신분적으로야 평등하고 동등할 수 있으나, 그들의 능력까지 같을 수는 없었다. 오늘날 시민도 마찬가지다. 법률상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면 누구나 피선거권과 선거권이 있으며, 투표권도 남녀와 노소를 불문하고 한 표만 행사할 수 있다. 그러나 시민 개개인의 덕성과 능력, 판단력, 견해 따위는 천차만별이다. 대화와 토론, 협상과 타협이 민주주의에서 중요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