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아갈 진(辵-8)길도(辵-9)같을 약(艸-5)물러날 퇴(辵-6)
노자의 말에 다시 귀 기울여 보자. “明道如孛, 夷道如纇, 進道若退.”(명도여패, 이도여뢰, 진도약퇴) “밝은 길은 어두운 듯하고, 평평한 길은 울퉁불퉁한 듯하고, 쭉 뻗은 길은 물러서는 듯하다.” 세상에는 밝기만 한 길, 평평하기만 한 길, 쭉 뻗기만 한 길은 없다. 자연의 길은 본디 그러하다. 보라, 인간이 애써 깐 길들조차 어떠한 형태인지. 세상사는 더욱더 그러하다. 요즘 잘 나가는 대한민국의 태극기를 보라, 음과 양이 어떤 형태로 그려져 있는지.
최근에 유행하는 표현이 있다. 극난 극복이 취미인 민족! 오랜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외침을 받아왔으면서도 거뜬히 살아남아 성세를 구가해 온 민족이므로 이 표현에 대해 반론을 제기할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 이처럼 절묘하게 표현한 이가 누구인지, 자못 궁금하다. 아마도 시민 가운데 한 사람이리라.
장구한 한국사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민중의 역사’가 도드라진다. 비록 지배층의 붓이 민중을 역사의 주역으로 서술한 적은 없었으나, 전하는 기록과 전승들을 통해 충분히 알 수 있다. 일본의 역사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민중의 반란이 얼마나 잦았던가? 고려 중기 무신들이 난을 일으켜 집권한 살벌했던 시절, 전국 곳곳에서 농민과 천민이 반란을 일으켰다. 비록 실패로 돌아갔으나, 그 모두 신분해방을 위한 혁명이었다.
안으로 지배층의 부정과 부조리가 거듭되면 민중은 일어났다. 밖으로 외침을 받아 국가가 존망의 위기에 봉착하면 민중은 낫과 괭이를 들고 나섰다. 동학혁명, 3·1 운동, 항일 투쟁, 4·19 혁명, 광주 민주화 운동, 촛불 혁명, 일본 불매운동 등은 한국인의 취미가 무엇인지 보여준 근현대사다. 일본 정부와 극우 세력이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위안부 할머니들과 정의기억연대도 살아 있는 민중의 역사다. 이 역사를 뒤흔들고 무너뜨리려는 정치가, 지식인, 언론이 蠢動(준동)하고 있다. 如孛(여패) 곧 어두운 듯하고, 如纇(여뢰) 곧 울퉁불퉁한 듯하며, 若退(약퇴) 곧 떠밀리는 듯한 상황이지만, 이 또한 이겨낼 것이다. 그것이 민중의 길이었으므로.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