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끝날 종(糸-5)몸신(身-0)아닐 불(一-3)건질 구(攵-7)
갑작스런 박원순 서울시장의 죽음은 많은 시민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몇 년 전의 메르스 사태에서도, 이번 코로나19라는 대유행에서도 적극적으로 또 민첩하게 대응하며 거대 도시 서울을 잘 방비했던 그였으므로 그의 죽음은 너무나 어이없고 느닷없는 사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온갖 浪說(낭설)이 떠돌며 갖가지 추측과 예단, 막말도 어지럽게 춤추고 있다.
한 사람의 일생이 혼란과 분열의 시대 속에서 적극적으로 그 사회 및 그 사회의 구성원과 관계를 맺으면서 흘러왔다면, 그만큼 논란도 커질 수 있다. 정보가 통제되고 획일화된 사회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실현하려는 시민의 열망과 노력이 큰 사회일수록 논란도 논쟁도 치열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섣불리 裁斷(재단)하고 斷定(단정)하는 일만큼은 삼가야 마땅하다. 그렇게 하는 것이 죽은 이를 위한 예의이기 이전에 민주 시민다운 언행이기 때문이다.
’도덕경’의 ‘죽간본’ 26장에 나온다. “閉其門, 塞其兌, 終身不侮; 啓其兌, 塞其事, 終身不救.”(폐기문, 색기태, 종신불모; 계기태, 색기사, 종신불구) “그 문을 닫고 그 구멍을 막으면 몸이 다하도록 업신여김을 받지 않고, 구멍을 열어두고 일을 이루려 하면 몸이 다하도록 이루지 못한다.” 여기서 兌(태)는 통하다는 뜻으로, 내 몸의 눈과 코, 귀와 입 따위 감각기관을 상징한다. 따라서 문을 닫고 구멍을 막는다는 것은 곧 세상과 絶緣(절연)한 채 산다는 뜻이다. 救(구)는 남을 돕다, 세상을 건지다, 뜻대로 이루다는 뜻이다.
앞 구절은 세상사에 전혀 관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관심조차 두지 않고 살면 죽을 때까지 不侮(불모) 곧 업신여김을 받지 않으며, 不辱(불욕) 곧 욕되는 일도 없고, 不勤(불근) 곧 고달프지도 않다는 말이다. 뒤 구절은 이와 반대다. 세상에 촉각을 곤두세우다가 세상사에 뛰어들어 무엇을 이루려고 하면 ‘終身不救(종신불구)’ 곧 죽을 때까지 애써도 고달프기만 하고 이뤄지는 일은 없다는 말이다. 박원순 씨의 죽음과 세상의 논란을 대하고 보니 ‘종신불구’ 한마디가 가깝게 다가온다.
정천구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