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을 상(口-9)집가(宀-7)의지(丿-3)개구(犬-5)
공자가 열다섯 살부터 배움에 뜻을 둔 이유는 정치를 하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벼슬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일찍부터 천하를 주유한 것도 그 때문이다. 자신을 알아줄 이를 찾아야 했으므로. 배움에 뜻을 두고 30년이 지나서야 간신히 벼슬을 했지만, 그것도 오래 가지 않았다. 다시 늦은 나이에 천하를 떠돌아야 했다. 교통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이었으니 아무리 멋쟁이 공자라 해도 그 몰골은 말이 아니었으리라. 그런 공자를 두고 ‘喪家之狗(상가지구)’ 곧 ‘상갓집 개’라 표현했을 정도이니.
공자와 그 제자들을 가장 비웃었던 이들이 있다. 이른바 隱者(은자)들이다. ‘논어’ ‘微子(미자)’편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長沮(장저)와 桀溺(걸익) 두 사람이 나란히 서서 밭을 갈고 있었다. 공자가 지나가다가 자로에게 가서 나루터를 물어보게 했다. 자로가 나루터를 묻자, 장저가 말했다. “저기 수레 고삐를 잡은 자는 누구인가?” 이에 자로는 “孔丘(공구)라 합니다”고 대답했다. 장저가 “노나라의 공구인가?”고 다시 묻자, 자로는 “맞습니다”고 대답했다. 장저는 “그렇다면 나루터를 알 텐데”라는 알쏭달쏭한 말을 해주고는 그만이었다.
자로가 걸익에게 물으니, 걸익은 “그대는 누구인가?”고 되물었다. “仲由(중유)라 합니다”고 대답하자, “공구의 제자인가?”고 또 물었다. 자로가 “그렇습니다”고 대답하니, 걸익은 이렇게 말했다. “세상을 바꾸려는 자가 천하에는 넘친다. 그러나 누가 바꾸겠느냐? 너는 사람을 피하는 선비를 따르는데, 어찌 세상을 피하는 선비를 따르지 않느냐.”
자로가 돌아와서 이를 말해주니,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鳥獸不可與同群, 吾非斯人之徒與而誰與? 天下有道, 丘不與易也.”(조수불가여동군, 오비사인지도여이수여? 천하유도, 구불여역야) “날짐승이나 길짐승과 한 무리가 되어 어울릴 수 없으니, 내가 이 사람의 무리와 함께하지 않는다면, 누구와 함께하겠느냐? 천하에 도가 있다면, 나도 굳이 바꾸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은자의 길과 공자의 길, 어느 쪽이 옳은 길일까?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