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기(八-6)쓸용(用-0)아닐 불(一-3)다할 궁(穴-10)
노자는 “大盈若盅, 其用不窮”(대영약충, 기용불궁) 곧 “꽉 찬 것은 속이 빈 듯하나 아무리 써도 다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왜 大盈(대영) 곧 ‘꽉 찬 것’은 속이 빈 듯할까? 여기서 ‘꽉 찼다’는 말은 주위 모든 것과 ‘하나가 되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오롯이 하나가 됐으니 도드라져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마치 없는 듯, 빈 듯 보인다. 어떤 기술을 온전히 체득한 사람을 보라. 그의 손과 기술이 따로 놀지 않고 마치 하나인 듯 보이지 않는가? 아무런 특별한 기술이 없는 듯이 보이지 않는가?
일본 京都(교토) 廣隆寺(코오류우지)에 일본 국보 1호가 있다. 높이 123.5m의 木造(목조) 불상인 ‘彌勒菩薩半跏思惟像(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다. 흥미롭게도 이 불상은 신라에서 전해진 것임에도 일본 국보가 됐다(한국의 국보에는 다른 나라의 것이 없다). 거의 1400년 동안 이에 맞설 만한 불상을 만들지 못했다는 뜻이다.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도 같은 양식의 불상이 있으니, 국보 8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다. 그렇다. 하나는 목조요, 하나는 金銅(금동)이다.
일본의 국보26호는 ‘喜左衛門井戶(기자에몬이도)’라 불리는 茶碗(다완)이다. 교토 大德寺(다이토쿠지) 孤篷庵(코호오안)에 있는데, 일본 국보 가운데 도자기는 이 다완이 유일하다. 일본인은 이 다완이 ‘자연미의 극치’를 보여준다면서 극찬하는데, 이 다완은 16세기 조선에서 만든 것이다. 조선의 도공을 그리도 많이 끌고 가서 극진하게 대우했음에도 왜 그 후로 이런 막사발 하나를 만들지 못했을까?
20세기 들어 일본은 비록 미국과의 전쟁에서 처참하게 패했음에도 운 좋게 다시 일어서 세계 2위 경제대국이 됐다. 반면 한국은 식민지가 되고 전란을 겪으며 다시는 일어설 수 없을 정도로 몰락했다. 그런데 21세기 지금, 한국은 경제력과 군사력뿐 아니라 문화에서도 강대국 면모를 보여준다. 이를 불가사의하게 보는 시선이 많으나, 알고 보면 놀랄 일도 아니다. 한국인과 한국 문화에 “아무리 써도 다하지 않는” 힘과 기운이 갈무리되어 있기 때문이니.
정천구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