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만 만(艸-9)것물(牛-4)스스로 자(自-0)바뀔 화(匕-2)
‘淸靜(청정)’은 靜的(정적)인 상태처럼 여겨질 수 있다. ‘靜(정)’이라는 글자도 포함하고 있으니 더욱 그렇다. 그러나 결코 정적인 상태가 아니다. 動(동)을 품은 靜(정)이니, 곧 動中靜(동중정)이다. 이런 동중정은 결코 정적인 방식만으로는 터득할 수 없다. 따라서 아무런 욕심을 갖지 않는 것, 삿된 생각을 하지 않는 것, 사물에 부림을 받지 않고 감각에 휘둘리지 않는 것 등만으로는 부족하다. ‘通物(통물)’ 곧 사물에 통달하는 공부를 해야만 한다.
노자는 ‘청정’을 세속을 초월해서 사는 眞人(진인)이나 神仙(신선)이 되는 길로써 제시하지 않았다. 통치 또는 정치의 방식으로 제시했다. 통행본 ‘도덕경’ 37장에 나온다. “道常無爲而無不爲. 侯王若能守之, 萬物將自化.”(도상무위이무불위. 후왕약능수지, 만물장자화) “도는 늘 함이 없으면서 하지 않음이 없다. 통치자가 그것을 지킬 수 있다면, 온갖 것은 스스로 바뀔 것이다.”
노자의 無爲(무위)를 가능하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淸靜(청정)이다. 통치자가 참으로 천하를 위해 해야 할 것은 道(도), 즉 無爲(무위)나 淸靜(청정)을 지키는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통치자가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통치자가 해야 할 일은 모든 人民(인민)이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일어서고 스스로 행동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요컨대 ‘萬物自化(만물자화)’가 되도록 환경을 조성해주는 일을 해야 한다.
노자가 지향한 ‘無爲之治(무위지치)’는 인민이 주체가 되어 자발적으로 행동하게 하는 정치다. 공동체와 사회, 국가를 구성하는 다양한 주체가 각자 할 일을 스스로 하도록 하는 것이니, 오늘날 민주주의가 추구하는 바와 다르지 않다. 역시 통행본 ‘도덕경’ 37장에 나온다. “不欲以靜, 天下將自定.”(불욕이정, 천하장자정) “통치자가 제 욕망대로 하지 않고 고요하기만 해도 천하가 저절로 안정된다.” 이 말에는 권력을 無欲(무욕)으로 써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민주주의가 아슬아슬한 것은 權柄(권병)이 有欲(유욕)의 손아귀에서 놀아나기 때문이다.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