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일 살(殳-7)사람 인(人-0)칼도(刀-0)살릴 활(水-6)칼검(刀-13)
노자는 “淸靜爲天下定”(청정위천하정) 곧 “맑고 고요함은 천하의 안정이다”고 말했다. 맑고 고요함은 권력을 가진 자가 지녀야 하는 덕목이다. 이런 덕목을 지니기 위해서는 권력이 민중으로부터 나오는 것임을 自覺(자각)해야 하는데, 민주정치가 실행되고 있는 오늘날까지도 권력을 權利(권리)쯤으로 여기는 자들이 적지 않다. 천하가 쉽게 안정되지 못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한국의 불교계는 禪宗(선종)이 주축을 이루는데, 이 선종은 話頭(화두)를 통해 깨치는 것을 중시한다. 그 화두를 깨치는 데서 긴요한 책이 ‘碧巖錄(벽암록)’이다. 이 책은 깨달음의 지침이 되는 ‘古則(고칙)’ 100개를 골라서 설명과 평가 따위를 덧붙인 것이다. 이 가운데 제12칙에 이런 글이 나온다. “殺人刀活人劍, 乃上古之風規, 亦今時之樞要. 若論殺也, 不傷一毫; 若論活也, 喪身失命.”(살인도활인검, 내상고지풍규, 역금시지추요. 약논살야, 불상일호; 약논활야, 상신실명) “사람을 죽이는 칼과 사람을 살리는 칼은 곧 예부터 내려온 변함없는 규칙이요 또한 오늘날의 지도리다. 만약 죽이는 것을 논한다면 터럭 하나도 상하지 않고, 살리는 것을 논한다면 몸과 목숨을 잃는다.”
흔히 뜬금없거나 영 엉뚱한 문답을 주고받으면 禪問答(선문답)한다고 말하는데, 위의 글도 좀 그렇게 보인다. 그러나 선문답은 비논리적이고 불합리한 문답이 아니라 논리와 합리를 뛰어넘은 직관으로 이루어진 문답일 뿐이다. 위의 글도 마찬가지다. 불교는 깨달음을 추구하는 종교인데, 그 깨달음은 ‘不可思議(불가사의)’한 경지다. 생각으로도 말로도 미칠 수 없는 경지다. 그럼에도 가르치고 배우려 애쓰는데, 이게 제대로 되면 사람을 살리는 일이 되지만 잘못되면 사람을 죽이는 일이 된다. 위에서 ‘殺人刀(살인도)’와 ‘活人劍(활인검)’으로 표현한 것도 그 때문이다. 이와 비슷한 것이 권력이다.
권력은 특정한 지위에 있는 사람에게 위임한 것으로, 살인도가 될 수도 있고 활인검이 될 수도 있다. 청정의 덕을 지녔느냐에 따라.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