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 오(口-4)알 지(矢-3)로써 이(人-3)이것 차(止-2)
노자는 몸을 닦거나 집안을 닦거나 나라를 닦거나 천하를 닦으면, 그에 걸맞은 덕이 갖춰진다고 말했다. 이는 몸을 닦아서 얻은 덕과 집안, 나라, 천하를 닦아서 얻은 덕은 서로 관통하고는 있으나, 다 똑같지는 않다는 뜻이다. 몸과 집안, 나라, 천하는 그 범위와 형세 등이 다르기 때문이다. 만약 똑같다면 몸만 닦으면 되지 구태여 집안이나 나라를 닦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집안의 살림을 잘 꾸려간다고 해서 기업을 잘 운영한다고 말하기 어렵고, 기업을 잘 운영한다고 해서 정부 조직을 효율적으로 통솔할 수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각각은 규모의 크기나 조직의 구조 따위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 차이를 간과하고 이것을 성공했으니 저것도 성공할 수 있다며 덤벼들었다가 낭패를 보는 사람이 매우 많다. 물론 대상의 특성이나 크기, 조직의 체제 따위가 어떠하든 두루 잘 경영하는 이도 있으나, 통찰과 식견, 유연성과 추진력을 두루 갖춘 드문 사람이다.
노자는 말했다. “以家觀家, 以鄕觀鄕, 以邦觀邦, 以天下觀天下. 吾何以知天下然? 以此.”(이가관가, 이향관향, 이방관방, 이천하관천하. 오하이지천하연? 이차) “집안의 덕으로써 집안을 살피고, 마을의 덕으로써 마을을 살피고, 나라의 덕으로써 나라를 살피고, 천하의 덕으로써 천하를 살핀다. 천하가 그러한 줄 내 어찌 아는가? 이것으로써 안다.”
노자도 집안을 살필 때와 마을을 살필 때, 나라를 살필 때와 천하를 살필 때, 살피는 잣대가 각각 다름을 분명하게 말했다. 대상이 다르면 그 판단과 평가의 잣대 또한 다름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쉽게 간과하고 하나의 잣대를 두루 쓴다. 쉽고 편하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쉽고 편한 건 ‘내’ 입장일 뿐이며, 대상을 오롯이 파악하지 못해 窮餘之策(궁여지책)으로 선택한 결과일 공산이 크다. 따라서 그런 잣대는 실제적인 타당성도 유용성도 얻지 못한다. 판단을 크게 그르쳐서 낭패스럽게 되거나 궁지에 내몰릴 수도 있다. 지난해 7월 일본 정부가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를 강행한 일이 그런 경우이리라.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