꽉 잡을 집(土-8)그것 지(
丿-3)것 자(老-5)잃을 실(大-2)
한국의 역사와 다른 모든 나라의 역사는 제각각 전개되어 왔는데, 사뭇 달라 보이는 역사들 속에서 기묘하게도 하나의 공통점이 발견된다. 모든 혼란과 분란, 약탈과 전쟁이 모두 지배층의 탐욕, 오만, 횡포에서 비롯되고 커졌다는 사실이다. 권력을 민중으로부터 위임받은 것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칼자루로 여기는 제왕, 그런 제왕에 빌붙어 惑世誣民(혹세무민)의 재주를 부리는 관리들이 亂世(난세)의 주동자들이었다. 난세의 초래에 민중은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다.
중국의 춘추시대는 예악 곧 기존 제도와 체제가 붕괴되기 시작하던 때였다. 공자가 禮樂(예악)을 그토록 부르짖었던 것도 혼돈 속으로 떨어지고 있던 시대를 붙들려는 버둥질이었다. 그런데 그 예악이 누구의 예악이었던가? 제왕의 예악이요 귀족들의 예악이었을 뿐이다. 그 시절 예법과 음악은 하층의 민중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민중은 그저 지배층을 경제적으로 떠받치며 부역에 동원되고 전쟁터에 불려 나가 죽어주면 되는 존재였다. 그러니 천하를 혼란에 빠뜨리고 싶어도 그럴 재간이 있을 리 없었다.
도덕경의 ‘죽간본’에서 노자는 이렇게 말했다. “爲之者敗之, 執之者失之. 聖人無爲, 故無敗也; 無執, 故無失也. 愼終若始, 則無敗事矣.”(위지자패지, 집지자실지. 성인무위, 고무패야; 무집, 고무실야. 신종약시, 즉무패사의) “억지로 하면 망치고, 매달리면 잃는다. 성인은 억지로 하는 일이 없으므로 망치는 일이 없고, 매달리는 일이 없으므로 잃는 일도 없다. 처음처럼 삼가서 매조지면 망치는 일이 없다.”
이는 권력을 가진 자나 권좌에 가까이 있는 자들에게 한 말이다. 권력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고 해도 된다고 여기면, 반드시 망하는 지경에 이른다. 망조가 들면 그것을 또 애써 부정하며 매달린다. 침몰하는 배의 돛대에 매달려 버둥대는 꼴이다. 이제껏 편안히 누리던 것들이 떠나가는 형국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붙들고 매달리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왕조가, 어느 가문이 무사했던가!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