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닐 불(一-3)경계할 계(言-7)탐할 도(食-13)탐내며 먹을 철(食-9)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전공의들의 집단 휴진이 이어지고 의사 국시를 접수한 의대생들 가운데 90%가 응시를 취소하자 몇몇 의대의 교수들이 제자들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집단행동에 나설 것이라 밝혔다. 그 끔찍한 제자 사랑이란. 그런데 전공의들과 의대 교수들 모두 했을 히포크라테스 선서 어디에도 그들의 행동을 정당화해주는 구절은 보이지 않는다. 선서는 도리어 그들의 행위가 이기적이며 부당하다는 것만을 부각시켜준다.
“내가 어떠한 집에 들어가더라도 나는 병자의 이익을 위해 그들에게 갈 것이며 어떠한 해악이나 부패스러운 행위도 멀리할 것이며 … 내가 이 맹세를 깨트리지 않고 지낸다면, 그 어떤 때라도 모든 이에게 존경을 받으며 즐겁게 의술을 펼칠 것이요 인생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허나 내가 이 맹세의 길을 벗어나거나 어긴다면, 그 반대가 나의 몫이 될 것이다.”
제자들이 불이익을 당할까 봐 나서는 의대 교수들을 보니, 문득 고려 시대의 座主(좌주)와 門生(문생)이 떠오른다. 좌주는 科擧(과거)를 주관한 사람이고, 문생은 그 좌주가 주관한 과거에서 급제한 사람이다. 급제자가 발표되면, 문생들은 公服(공복)을 갖추어 입고 좌주를 찾아가 인사했다. 그로부터 좌주와 문생들 사이에는 사적인 유대 관계가 형성되었는데, 끝내 붕당을 이루어 서로 庇護(비호)하는 폐단으로 이어졌다.
그러지 않아도 코로나19 방역이 위태운 상황인데, 이런 상황을 모를 리 없을 전공의들은 집단 휴진을 강행하고 의대 교수들은 그들을 지지한다? 과연 정당화될까? 연암 박지원이 ‘穢德先生傳(예덕선생전)’을 지으면서 쓴 짤막한 시가 있다. “士累口腹, 百行餒缺. 鼎食鼎烹, 不誡饕餮.”(사루구복, 백행뇌결. 정식정팽, 불계도철) “선비가 먹고 사는 데 매이면 온갖 행실이 이지러지지. 진수성찬 먹다가 비참하게 죽는 건 탐식을 경계하지 않았기 때문.”
노자는 “愼終若始, 則無敗事矣”(신종약시, 즉무패사의) 곧 “처음처럼 삼가서 매조지면 망치는 일이 없다”고 했는데, 그들에게 ‘처음’이 있기는 했을까?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