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갈 신(心-10)매조지 종(糸-5)같을 약(艸-5)처음 시(女-5)
인류의 문명은 욕망이 일군 것이다. 욕망이 없었다면 이런 문명은 태어나지도 지속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욕망이 문명을 마냥 빛나게 한 것은 아니다. 인류가 문명이라는 명패를 내걸고 폭력과 억압, 착취와 파괴로 얼룩지게 만든 것도 욕망에서 비롯되었다. 욕망의 대상은 한정되어 있는데, 욕망은 끊임없이 커지는 속성을 갖고 있어서다. 이 문명에서 철학과 종교가 탄생하는 데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이 바로 이 욕망이다.
노자는 도덕경의 ‘죽간본’에서 말했다. “人之敗也, 恒於其且成也敗之. 是以聖人欲不欲, 不貴難得之貨; 學不學, 復衆之所過. 是以能輔萬物之自然, 而弗敢爲.”(인지패야, 항어기차성야패지. 시이성인욕불욕, 불귀난득지화; 학불학, 복중지소과. 시이능보만물지자연, 이불감위) “사람이 망치는 걸 보면 언제나 거의 이루어지려 할 때 망친다. 이런 까닭에 성인은 바라지 않기를 바라므로 얻기 어려운 재화를 귀하게 여기지 않고, 배우지 않음을 배우므로 뭇 사람이 허물에서 되돌아온다. 이러하므로 (성인은) 온갖 것이 저절로 그러하도록 도울 뿐 억지로 하려 하지 않는다.”
知止(지지), 곧 멈추어야 할 때 멈출 줄 알아야 한다. 그게 지혜다. 그런데 욕망이 그 지혜를 가로막는다. 이제까지 잘 왔으니 앞으로도 잘될 거라면서, 여기서 멈추면 모든 게 허사가 된다면서 충동질을 해대는 게 욕망이다. 그런 욕망의 꾀임에 솔깃해서 더 나아가려 했다가는 망치기 십상이다. 이런 욕망에 누가 더 잘 휘둘릴까? 힘없고 배운 게 없는 사람일까, 힘 있고 배운 자일까?
노자는 “愼終若始, 則無敗事矣”(신종약시, 즉무패사의) 곧 “처음처럼 삼가서 매조지면 망치는 일이 없다”고 말했다. 참으로 뜨끔한 말이며, 깊은 이치가 담긴 말이다. 일이 잘 안 될 때는 앞을 보아야 하고, 잘될 때는 뒤를 돌아볼 줄 알아야 하는 법. 잘되고 있다는 사실이 ‘처음’을 잊게 하고 ‘삼가는 마음’을 멀리하게 하므로. 이 연재도 노자의 ‘죽간본’ 1700여 글자로 참 길게 이어왔다. 멈추어야 할 때가 이미 지났는지도 모르겠다. 고전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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