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황사~황복사지 트레킹 코스
- 보문들 걷다보면 낭산초입 도착
- 진평왕릉 지나 보문사·수오재
- 신문왕릉 이어서는 사천왕지
- 발길 닿는 곳마다 역사 발자취
지진이 휩쓸고 간 경주는 외로움에 떤다. 봄의 벚꽃철에 이어 경주가 가장 아름다운 이맘때면 어김없이 찾던 관광객의 발길이 뜸해졌기 때문이다. 또다시 여진이 올 수도 있지만 큰 피해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 같다. 황금 들녘에서는 곡식이 익어가고 있다. 경주 시내에 이렇게 넓은 곡창지대가 있었나 싶다. 일부 구간에선 태풍 '차바'의 영향으로 나락이 쓰러진 곳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피해가 적어 다행스러웠다.
경주는 대한민국 역사의 '보고(寶庫)'다. 불국사 석굴암 첨성대 석빙고 등 수많은 문화재가 곳곳에 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늘 유명한 유적지만을 찾아 같은 장소를 방문하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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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 경주시 낭산의 폐사지인 중생사를 둘러본 뒤 황복사지 삼층석탑으로 가는 길목. 경주에 지진과 태풍이 찾아오면서 관광객은 뜸해졌지만 벼이삭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들판을 황금빛으로 물들이고 있다. |
근교산 팀은 경주의 '속살'을 만나기 위해 경주 보문들~낭산 둘레길을 답사했다. 분황사 주차장에서 출발해 모전석탑지~설총묘~연화문 당간지주~보문 사지·석조·당간지주~신문왕릉~선덕여왕릉~낭산 중생사~황복사지 삼층석탑을 거쳐 분황사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코스다. 전체 12㎞ 정도로 순수 트레킹 시간은 3~4시간, 식사와 휴식을 포함해도 5시간이면 가능하다. 평탄한 코스가 대부분이어서 큰 무리는 없다. 트레킹 출발지는 분황사 주차장이다. 황룡사 터를 오른쪽으로 끼고 100m 정도 가면 사거리가 나오고 신호등을 건너 오른쪽으로 발길을 옮기면 구황동 모전석탑지가 나타난다. 모전석탑은 돌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은 탑으로 지금은 다 허물어지고 남북 감실(신위 및 작은 불상 또는 성체 등을 모셔둔 곳)의 돌기둥 두 쌍만 남았다. 논길로 코스를 옮긴다. 왼쪽 저 멀리에 명활산 정면에 나지막한 낭산이 눈에 들어온다. 누런 들녘이 펼쳐진 곳을 '보문들'이라 한다. 왼쪽 길로 접어든다. 또다시 나타난 갈림길 오른쪽에 황복사지 삼층석탑이 있지만, 코스 후반에 만나기로 하고 진평왕릉 쪽 직진 코스로 나아간다. 논이 끝나는 지점에 고목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고목을 지나다 보면 오른쪽 넓은 초지에 진평왕릉(신라 26대 왕·사적 제180호)이 웅장한 자태를 드러낸다. 봉분의 높이는 8m, 지름은 40m다. 진평왕은 남산산성을 쌓고 명활산성을 개축하는 등 삼국통일의 기틀을 마련했다. 인근에 주차장과 공중화장실이 있다. 아스팔트 도로가 나오면 오른쪽으로 꺾어 보문선원 방향으로 500여 m를 더 들어가면 설총묘(경상북도 기념물 제130호)를 만난다. 지름 15m, 높이 7m 규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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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총묘 |
다시 아스팔트 길을 마주하면 보문사지 연화문 당간지주(보물 제910호)가 보인다. 밋밋한 여타 당간지주와 달리 연꽃무늬가 있어 보물로 지정됐다. 부처나 보살의 공덕을 기리거나 마귀를 물리칠 목적으로 달았던 당이라는 깃발의 깃대가 당간인데 이를 받쳐 세우는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아스팔트 길을 따라 뚜벅뚜벅 걷다 보면 보문사지를 만난다. 건립연대는 알 수 없으나 보문이라고 새겨진 기와가 출토돼 절 이름이 보문사였음이 밝혀졌다. 현재 금당지, 동서 목탑지 등의 건물터와 석조, 당간지주 등이 남아 있지만 절터 대부분은 넓은 논으로 경작되고 있다. 보문사지 석조는 외부와 내부에 아무런 장식도 없으나, 불국사 내 4개의 석조는 장식이 돼 있어 대조적이다. 석조 뒤편 아랫단에 물을 빼기 위한 구멍이 있어 실제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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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문동 석조 |
경주 고택 체험지로 알려진 수오재로 발길을 옮기면 높이 5m, 지름 22m의 효공왕릉(신라 52대 왕·사적 제183호)이 있다. 다시 배반노인정과 굴다리를 지나 큰길로 접어들어 능마을 버스정류장과 갤러리 'FLORA'를 지나면 신문왕릉(제31대 왕·사적 제181호)이 나온다. 지금까지 봤던 왕릉 대부분이 노지에 마련됐다면 신문왕릉은 높은 담장 안쪽에 곱게 모셔진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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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덕여왕릉 가는길. |
사천왕지를 지나 700m 정도 들어가면 선덕여왕릉을 만날 수 있다. 오르막이 짧아 힘들지는 않다. 선덕여왕은 신라 최초의 여왕으로 첨성대를 만들고 분황사를 창건했으며 황룡사 9층 목탑을 건립하는 등 신라 건축의 금자탑을 이룩하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능지탑지와 중생사에서 돌아나오면 황복사지 삼층석탑을 만난다. 여느 삼층석탑과는 달리 통통하고 야물게 보인다. 1943년 이 탑을 수리할 때 순금으로 만든 여래좌상(국보 제79호·높이 12.2㎝), 여래입상(국보 제80호·높이 14㎝)과 금동 사리함이 나왔다고 한다. 이 두 불상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사리함 뚜껑의 안쪽에 새긴 글에 따르면 효소왕이 부왕인 신문왕의 명복을 빌고자 692년에 이 탑을 세웠다. 근교산 팀은 여기서 황룡사 터를 통과해 분황사 주차장으로 가려 했으나 길이 막혀 있어 여기서부터는 같은 코스를 되돌아와야 했다.
◆주변 가볼만한 곳
- 천년고도 전설 간직, 분황사 석정·모전석탑…경주 답사길 참 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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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원한 능지탑 |
이번 코스의 처음과 끝을 장식하는 분황사는 신라의 고승인 원효대사가 머물렀던 절이다. 경내에는 신라의 석탑 중에서 가장 먼저 세워진 것으로 알려진 모전석탑(국보 제30호)과 원효대사의 비석을 세웠던 화쟁국사비부(경북 유형문화재 제97호), 신라 호국룡 설화가 깃들어 있는 석정(경북 문화재자료 제9호) 등이 남아있다.
원효대사는 의상과 함께 당나라 유학길에 올랐다가 밤에 목이 말라 해골물을 마신 것을 계기로 모든 진리는 자신에게 있음을 깨닫고 다시 돌아와 불교의 통합을 위한 이론인 화쟁사상을 제시했다. 원효를 기리기 위해 고려 숙종이 '대성화쟁국사'라는 시호를 내리며 비석을 세웠는데 지금은 우물가에 받침대만 남아있다. 이것이 경북 유형문화재 제97호인 화쟁국사비부다. 이후 방치되었던 것을 조선 후기에 추사 김정희가 찾아서 '차신라화쟁국사비적'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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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황사 모전석탑 |
분황사 석정은 '호국룡변어정'이라 불리는 신라 시대 우물이다. 우물 틀의 외부는 높이 70㎝에 팔각이며 내부는 원형이다. 삼국유사에 보면 원성왕 11년(795년)에 당나라의 사신이 와서 신라의 호국용을 세 마리의 물고기로 변신 시킨 뒤 잡아서 본국으로 떠났다. 그 하루 뒤에 두 여인이 원성왕 앞에 나타나 두 마리는 그들의 남편이고 하나는 분황사 팔각정에 사는 호국용이라며 구해달라고 호소했다. 왕이 사람을 시켜 당나라 사신을 쫓아가서 물고기를 다시 빼앗아 각각의 우물에 넣어주어 살게 했다는 전설이 기록돼 있다. 약사여래입상도 유명하다.
◆교통편
- 노포동터미널서 경주 이동, 버스로 갈아타 분황사 하차
경주까지는 금정구 노포동 부산종합버스터미널에서 시외버스를 탄다. 경주시외버스터미널 앞에서 시내버스 100번을 타고 분황사 정류장에서 내린다. 승용차로는 경부고속도로(68㎞)를 타고 경주 IC에서 경주 시내로 빠져나온 뒤 서라벌대로(4.8㎞)를 이동한다.
문의=생활레저부 (051)500-5147 이창우 산행대장 010-3563-0254
유정환 기자defiant@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