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촬영을 다녀오는 길에 부산 사상터미널 근처 어느 병원 주변에 앉아계시던 한 할머니가 나를 물끄러미 보신다.
나도 유심히 보았더니 대뜸 성난 목소리로 하시는 말씀이 "김 기사 어디 갔다 인제완?" 나는 금방 한방 얻어맞은 것 처럼 머리가 띵했다.



우선 사진부터 여러 컷을 찍는다. 고개를 살짝 돌리시며 웃으시다가, 손사래를 치시면서 얼굴을 돌리시다가,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리시고 살짝 빠끔히 나를 보시다가…. 그런데 다음 순간, "아이구, 실례했네요. 내가 사람을 잘못 보고 괜히 소릴 질렀네요" 이러신다. 그 때는 아주 예의 바르고 유순한 어투이시다.



인자한 모습, 평범한 입성, 세월 따라 저절로 깊은 시름이 박힌 주름, 나이에 걸맞게 머리도 세었고, 젊었을 적엔 미인이었을 같은 할머니. 어투나 억양으로 미루어 경상도 분은 아니신 것 같다. 이북에서 피란 내려와 숱한 세월동안 산전수전 모든 풍파를 다 겪으시고, 한 때는 집안에 자가용 기사를 두셨을 수도…. 나는 온갖 상상을 해봤다.



건망증은 아니신 것 같고, 요즘 우리 주변에 자주 눈에 띄는, 온 집안 식구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치매이신가? 그래서 병원 주위에 앉아계신가? 괜히 정상적이고 건강한 할머니를 이런 엉뚱하고 애매한 몹쓸 병자로 만드는 건 아닌지, 문득 죄스런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