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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여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서진

탐욕스러운 재벌, 철학 없는 정치인들… 더워서 외면했던 일 생각하니 우울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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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0-08-27 20:42:44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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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에도 광안리 바다에서 수영을 했다. 집이 바다 근처라 집에서 수영복으로 갈아입은 뒤 도로 하나를 건너가서 풍덩 바다에 뛰어들면 된다. 작년에는 비가 온 날이 많아서 바다에 뛰어든 날이 얼마 되지 않았지만 올해는 숨이 턱 막히도록 더운 날들이 많아서 하루에 두 번이나 바다로 뛰어든 날도 있었다. 밤에는 크고 작은 공연을 구경하며 해변을 산책했다. 주말 밤에는 광안리 해변 도로를 차 없는 길로 만들어 각종 공연이 이루어진다. 그 중 크로스 노트 재즈 밴드는 가장 좋아하는 팀인데 브라스와 간단한 드럼, 키보드와 기타가 전부인 단촐한 구성이지만 'Feel So Good'이나 'More better blues' 같은 퓨전 재즈 연주곡을 애드리브를 곁들여 멋들어지게 연주한다. 가끔씩 광안리로 놀러오시는 어머니는 인형극을 좋아하신다. 수십 개의 줄이 달려 있는 인형은 피아노도 치고 마이크를 잡고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출 줄 안다. 심지어 관객을 향해 오줌을 싸기도 하는데 바구니에는 쉴 새 없이 천 원짜리가 쌓인다. 이외에도 스케이트보드 공연, 마술, 연극 등이 줄줄이 이어졌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서울에 사는 친구들이 무척 부러워한다. 여름만큼 부산에서 산다는 것이 자랑스러울 때가 없다.

여름 동안 나의 하루는 대충 이랬다. 되도록 아침 일찍 일어나서 글을 쓰다가 열 시 정도가 되면 바닷가에 나가 그날의 바다 상태를 점검한다. 여차하면 아침 샤워 대신 수영을 하고 해변에서 신문을 본다. 집으로 돌아와 점심을 차려 먹지만 더워서 요리를 하기 싫으면 시원한 밀면을 먹기도 한다. 밥을 먹고 기타를 열심히 연습한다. 다행히 이제는 F코드를 잡을 수 있다. 인터넷으로 자질구레한 일을 처리하면 낮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오후 네 시쯤에는 열이 펄펄 나는 옥상에 올라가 호스로 물을 뿌려준다. 옥상은 금세 김을 모락 모락 내며 열기가 조금 식는다. 파라솔을 펴고 비치 의자에 앉아서 시원한 아이스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는다. 우리집 옥상에서는 황령산도 보이고 광안대교도 보인다. 이렇게 한 시간을 있다가 오후 다섯 시쯤이 되면 다시 바닷가로 가서 수영을 한다. 햇빛이 강렬한 낮 시간에는 수영금지다. 오전 아홉 시 이전이나 오후 다섯 시 이후가 적당하다. 저녁에는 시원한 생맥주 한두 잔을 마신다. 얼린 맥주잔에 생맥주를 담아주는 곳을 좋아한다.

달력을 보니 여름이 끝나가고 있다. 해수욕장도 폐장할 것이다. 주말 밤에도 해안도로는 막지 않을 테고, 파라솔도, 튜브 대여소도, 무료 샤워장도, 새까맣게 피부가 탄 안전요원들도 사라지고 없을 것이다. 반바지와 샌들은 신지 못할 테고 바닷물이 차가워져서 수영도 하지 못하겠지. 짧은 차림으로 해변을 어슬렁거리던 청춘남녀들도 이미 집으로 돌아갔다. 휴가도 끝나고 여름방학도 끝났다. 이제 여름을 제대로 즐기게 되었는데 여름이 끝나간다니 아쉽다. 슬프고, 우울해지려고까지 한다.

일년 내내 여름이었으면 좋겠다. 다른 뉴스보다 오늘의 날씨에 더 관심이 많은 날들이 계속 되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바람일 뿐, 한여름에도 우리를 답답하게 만드는 사건은 계속 일어났다. 탐욕스러운 재벌, 사교육에 눈먼 부모와 혹사당하는 학생들, 여전히 밤늦도록 고생하는 직장인들, 철학 없는 정치인들이 장식했던 한여름 뉴스…. 더워서 눈을 잠시 돌렸던 일도, 날씨가 시원해지면 더 민감해질 것이다. 여름이 끝나면 왜 이렇게 현실로 돌아간다는 생각이 드는지 모르겠다. 바닷가에서 수영을 할 수 있어서 여름이 좋다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현실에 등을 돌릴 수 있어서 좋았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날씨가 선선해지면 덥다고 미뤄두었던 길고 긴 소설을 다시 써야 하겠지….

하지만 여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위로해본다. 9월의 바다가 진정한 여름 바다라는 걸 아는지 모르겠다. 견딜 수 있을 때까지 반바지와 샌들을 신고 다닐 것이다. 9월의 바다는 여름의 온기를 품고 있는 데다가 8월보다 깨끗해서 수영하기에 적당하다. 심지어 10월 중순까지 바다에서 수영을 한 적도 있다. 햇살도 여름보다는 강렬하지 않기 때문에 선탠하기도 좋다. 파라솔도 튜브도 사람들도 별로 없다. 혹시 나처럼 여름이 끝나가는 것을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9월의 여름을 기대해도 좋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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