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부산메디클럽

[시론] 파리채에 새긴 글 /이지양

열 번에 아홉 번은 헛손질하기 일쑤… 우리나라 법질서는 麻로 만든 파리채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08-31 20:17:52
  •  |  본지 26면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주소복사
  • 스크랩
  • 인쇄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우리나라 18세기에 이옥이란 선비가 있었다. 그가 쓴 글 중에 '파리채에 새긴 글'이라는 것이 있다. 천하고 더러운 파리를 잘 잡는 파리채를 얻고서 감탄한 내용이다. 파리가 더럽고 불편한 존재라 채를 만들어 잡긴 해야 되는데 기존에 사용해오던 구리철사 파리채, 가죽 파리채, 마(麻)로 만든 파리채는 모두 성능이 좋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것들은 과잉 징계로 끔찍하게 때려잡거나 허탕 징계로 놓쳐버려 허무하게 만들기 일쑤여서, 그런 파리채로는 결코 적절한 대응을 하기 힘들었다. 그런데 소의 꼬리로 만든 파리채는 신통하게도 파리를 약간 겁주거나, 기절시키거나, 죽이거나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죽이더라도 곱게 죽일 수 있는 단계 구분이 가능했다. 그는 기뻐하면서 소꼬리 파리채를 찬미하는 글을 새겼다. 징계가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으니 검소하고, 살려야 할 경우는 살리니 인(仁)에 마땅하다고 말이다.

이옥의 은유는 탁월해서, 독자의 뇌 속에서 원리 유추를 통해 현실 문제를 연상하게 만든다. 물론 파리를 죄인과 동일시할 수는 없다. 죄짓는 인종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누구나 죄를 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파리를 죄 자체로 대입시키면 참 절묘하게 읽힌다. 국회의원의 성희롱 폭언을 포함한 일련의 성상납 성범죄 파문을 보면 저절로 이 파리채에 새긴 글이 연상된다. 지금 우리나라의 법질서는 대체로 마로 만든 파리채에 가깝지 않을까. 마 파리채는 위의 네 종류 파리채 가운데 가장 성능이 부실하다. 마가 뻐덕뻐덕하고 제멋대로 엉클어져서 잘 안 맞기 때문에 파리를 열 번 잡으면 아홉 번은 헛손질하는 데다, 어쩌다 한 번은 잡더라도 도리어 파리채에 더럽게 묻는 탓에 결코 개운치 못한 것이다. 법이 마 파리채처럼 엉성하니, 죄의 크기에 딱 맞게 징계할 수 없어서 십중팔구 놓쳐버리고, 어쩌다 하나를 징계해도 동일률에 맞지 않아서 재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상태라고 할까. 피해자와 피해 현상은 있는데 가해자는 없거나 있다 해도 아주 손쉽게 면죄부를 줘 버리니, 문제가 되풀이될 뿐 아니라 폭증하는 현상을 보인다. 지도층이 손수 시범 보인 대로 따라 하는데 무슨 잘못이겠는가. 뉴스를 보면 알겠지만 아이부터 노인까지, 고위층부터 거지까지 대한민국은 가히 성범죄왕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범죄는 이렇게 폭증하는데 그 뒤처리를 보면 놀랍게도 철저히 가해자 중심의 법질서가 확립되어 있음을 목격하게 된다. 국민 개개인이 도덕의식을 가지고 개탄하고 비판하지만 그건 말일 뿐, 현실 사회의 법질서가 가해자 중심으로 되어 있는 것에 대해 아무런 실질적 대책이 되지 못한다. 그러니 보라. 국민의 정서에 절망감을 드리운 국회의원, 성희롱을 일삼은 교장, 교사, 경찰, 군인, 누구든지 슬며시 다 빠져나가지 않는가. 엉터리 파리채가 놓친 파리들인 것이다. 정신지체 장애인을 폭행하는 중·고등학생들이 누구를 보고 배운 것이겠는가. 힘 있는 자들이 약자에게 어떻게 했는지, 약자를 어떻게 이용하고 울리고 짓밟았는지, 아이들이 고스란히 따라 하고 있다. 법을 어찌하면 술술 피해 가는지 아이들이 따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따라 하면 사회의 실세가 되어 국회의원이 되고 고위직에 한자리하는 큰 인물이 될 수 있다고 믿는지도 모를 일이다.

가해자 중심의 법질서가 확립된 사회는 아무 할 일이 없다. 잘못한 사람을 방치하거나, 모르는 척 눈감고 쉽게 용서해버리는데, 무슨 할 일이 있겠는가. 경찰도, 검찰도, 행정 공무원도, 입법부도, 모두 할 일이 없다. 피해자 보호중심의 법질서가 확립되어야 할 일이 많다. 가해자 징계는 물론 피해자 보호시설을 만들어서 치료하고 보호하고,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예방책을 세우고, 피해자 가족들도 보호하려고 들면 일이 복잡해지고 많아진다. 그러니 번거롭고 귀찮아서 관행대로 외면해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편하다고 가해자 중심 법질서를 그대로 두면 곧 사회 기강이 무너져 범죄 국가가 될 것이다. 사회 전체가 은연중에 범죄자나 가해자를 편드는 꼴이 되어버리니, 어떻게 범죄가 폭증하지 않겠는가. 결국 엉터리 불량 파리채 같은 법질서를 바꾸는 수밖에 없다. 현실에 법이 한참 못 따라가지 않는가. 국회의원들은 모두 무엇을 하는가? 시대 현실과 현장에 알맞은 입법을 위해 고심하는가?

연세대 국학연구원 전임연구원

[국제신문 공식 페이스북] [국제신문 인스타그램]
  • 기사주소복사
  • 스크랩
  • 인쇄

많이 본 뉴스 RSS
  • 종합

  • 정치

  • 경제

  • 사회

  • 스포츠

새 정부 과제는
투자·소비심리 회복…FTA 재협상·중국 사드 보복 '급한불'
대선후보 내조열전
심상정 남편 이승배 씨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