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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한국사회에 이는 인문학 바람 /이택광

이 같은 현상은 경제주의가 오히려 고통을 주고있다는 자각의 실현이다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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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0-09-01 20:54:57
  •  |  본지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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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눈에 띄게 인문학 부흥을 목격할 수 있어서 흥미롭다. 한마디로 시장에서 반응이 오고 있다는 것인데, 출판계도 이런 현상을 일찌감치 감지하고 발 빠르게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최근 몇몇 주요 문학전문출판사들이 속속 인문총서를 기획하고 있는 것은 이와 같은 움직임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정의란 무엇인가' 같은 철학서가 최장기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내한한 저자의 직강을 듣기 위해 수천 명의 독자들이 문전성시를 이룬 것은 일시적 사건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런 양상은 확실히 전면적이고 개방적이라는 측면에서 'CEO를 위한 인문학'이나 '노숙자를 위한 인문학' 같은 인문학 운동과 상당한 차별성을 갖는 것처럼 보인다.

지금 목격하고 있는 인문학 부흥 현상은 단순하게 인문학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졌다는 말로 마무리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말하자면, 이 현상 자체가 진실이라기보다, 보이지 않는 진리가 상징적 의미로 돋을새김되어 있는 일종의 증상인 것이다. 얼마 전까지 '먹고사니즘'이 강력한 이데올로기로 작동하던 한국 사회에서 갑작스러운 인문학 부흥 현상은 확실히 기이한 것이다.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폭발적인 한국 독자들의 반응을 보고 저자인 마이클 샌델은 "한국 사회가 정의를 갈구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는데, 외국인의 눈에도 이 현상은 무엇인가 '과잉'을 내포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미국에서도 이 책은 베스트셀러이기 때문에 한국 독자들이 이 책에 관심을 보이는 것 자체가 특이한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 집중과 강도에서 미국의 수용양상과 다르다는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여하튼, 평소에 인문학의 위기를 개탄해온 인문학자라면 모처럼 인문학이 독자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을 그렇게 나쁜 일이라고 타박할 수는 없겠다. 다만 여기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이런 부흥이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한 생각이다. 여러 가지 이유를 거론할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한국 사회의 분위기가 과거와 달라졌다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이 변화의 원인은 무엇일까? 바로 경제가 '꿈'을 주던 시절이 끝나가고 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부동산으로 상징되었던 한국 사회의 경제 부흥이 더 이상 과거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꿈이라는 것은 대체로 상상적 이미지를 통해 그 꿈을 꾸는 당사자를 즐겁게 만들어준다. 과거에 경제가 그랬다면, 현재는 더 이상 경제가 그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를 집권에 이르게 했던 경제주의가 오히려 고통을 주고 있는 현실을 만들어내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자각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인문학이 경제주의의 잘못을 치유할 수 있는 대안으로 호명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대안이라기보다 보충이라고 하는 것이 타당하겠다. 경제주의가 남겨 놓은 결핍의 지점들을 메우기 위해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돌아오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크게 본다면 이런 관심은 자기를 계발하기 위한 또 다른 '기술'로 인문학을 사용하고자 하는 속셈일 수도 있다.

인문학도 신자유주의시대를 살아가기 위한 '미덕'의 일종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으로 인해 최근 목도하는 인문학 부흥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상황은 복잡해진다. 인문학자로서 이 현상을 반길 것인지 비판할 것인지 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강박이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식을 덕으로 간주했던 소피스트들이 없었다면, '너 자신의 무지'에서 철학이 출발한다고 역설하는 소크라테스가 등장할 수 없었을 것이다. 소피스트들에게 지식이라는 것은 '대상에 대한 정보를 잘 활용하는 것'이었지만, 소크라테스는 이런 지식 말고도 다른 '앎'이 있다는 사실을 주장함으로써, 인문학의 영역을 제시했다고 할 수 있다. 인문학이 자기계발의 목적으로 사용되는 현실에 대해, 인문학자라면 다른 앎을 추구하는 인문학의 의의를 지속적으로 내세우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인문학 부흥은 이렇게 다른 앎의 영역을 찾아나가는 지점에서 제대로 임자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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