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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아테나의 변신 /이성희

남성적 지배문화 한계에 다다르고

부드러운 여성적 '공동협력' 모델로 문명사 바뀌어가나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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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0-09-08 20:54:32
  •  |  본지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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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꽤 오래전에 사놓은 책이었다.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포르토벨로의 마녀'는 서재에 늘 삐딱하게 놓여 있었다. '마녀'라는 어휘가 울리는 파동이 무척 고혹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무슨 이유에선지 그 책은 거의 내 주의를 끌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달포 전 손이 어쩌다 그 책을 잡고 말았다, 우연히.

작가 코엘료는 신비한 힘을 가진 한 여인의 삶을 통해 남성 중심적인 서구 문명이 억압하고 왜곡시킨 신의 여성성, 여신의 옛 전통을 소환하고 있었다. 이 소설을 읽을 무렵 나는 리안 아이슬러가 지은 '성배와 칼'이라는 책을 흥미롭게 읽은 뒤였으며, 클림트의 기이한 그림 '아테나'에 대해 글 한 편을 써내야 할 일이 있었던 때였다. 그런데 그 소설이 이 모든 것과 깊이 연관되어 있었다. 우연이란 얼마나 공교로운 것인가.

'성배와 칼'에서 리안 아이슬러는 인류의 문명사를 새로 쓰고 있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인류 문명의 가장 중요한 발명들은 놀랍게도 신석기 시대에 이루어졌다. 농경, 건축술, 도기 제작, 무역, 종교 등은 이미 고도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이 시기 문명들의 공통된 특징은 여신 숭배와 부의 고른 분배, 남녀유대와 상호존중하고 배려하는 모권 중심의 문명이었다. 고고학 발굴의 결과 이 시기에는 전쟁의 흔적이 없었다. 이러한 사회를 저자는 '공동 협력' 모델이라고 하였다. 사랑과 희생을 담는 여성성의 '성배'야말로 이 문명의 상징이다.

그런데, 기원전 4300년경 이후 3차례에 걸쳐 전사 종족들이 대규모의 침략 전쟁을 일으킨다. 그들은 전 세계에 걸쳐 여신 숭배의 문명을 잔혹하게 파괴하고 정복하였다. 그들은 벼락을 든 폭력적인 남신을 앞세운, 지배와 복종의 위계절서를 강조하는 부권 중심의 문명이었다. 그들은 '지배 중심' 모델의 사회였으며, '칼'의 문명이었다. 우리가 세계사 교과서에서 배웠던 인류의 문명이란 이 '칼'의 폭력 위에서 시작된 역사이다. 그것이 수메르이고, 이집트이고, 그리스이다. 그리고 우리이다.

'칼'을 든 부권적 전사 종족들은 '성배'의 문명을 정복하면서 종교와 신화까지 파괴하고 왜곡시켰다. 위대한 여신들은 남신에 의해 성적으로 정복을 당하거나 악마로 왜곡되어졌다. 이러한 과정 속에 등장한 기묘한 신화적 캐릭터가 바로 아테나이다. 아테나는 모든 생명의 시원인 어머니의 자궁이 아니라 아버지(제우스)의 머리에서 태어났으며, 여자이면서 완전무장한 전쟁의 신이다. 여자라는 신체와 남자의 폭력성이 뒤섞인 이 기이한 캐릭터는 '칼'이 '성배'를 파괴하고 왜곡하는 과정에서 생긴 잡종이다. 이 여신은 이후 철저히 남성 편에 가담한다.

클림트의 그림 '아테나'를 처음 보았을 때 느낌이란 묘한 것이었다. 금방이라도 마차를 타고 전장을 휘달릴 것만 같은, 금빛 투구와 갑옷으로 무장한 여전사, 그렇지만 투구 속의 표정과 눈빛은 마주치는 무엇이든 유혹해 버릴, 영락없는 팜므 파탈이었다. 이 모순된 이미지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을 때 '포르토벨로의 마녀'를 읽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그 소설 여주인공의 이름이 아테나였다.
그 자신이 저 시원의 위대한 여신 계보에 속하면서도 남성의 편에 섬으로써 남성 지배 중심 체제를 확고히 했던 여전사 아테나는 코엘료의 소설 속에서는 반대로 전쟁과 폭력 속에 빠진 남성 중심의 종교와 문화를 전복시키면서 여성성의 신성한 사랑을 부활시키고자 한다. 상상계 속에서 아테나의 이러한 변신은 문명사 변화의 한 징후는 아닐는지. 아이슬러는 폭력에 기초한 부권적 '지배 중심' 모델은 한계에 이르고 이제 문명은 여신의 부활, 서로 사랑하고 배려하는 부드러운 '공동 협력' 모델로 나아가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세기말의 데카당스 속에서 아테나의 여성적 관능을 발견한 클림트 역시 그의 방식으로 남성 중심적 서구 문명의 위기를 예감했던 것은 아닐까?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먼 옛날, 위대한 어머니 여신의 전통을 부활시켰던 노자(老子)의 사상 속에 이미 예견되었음을 귀뜸해 두자. "여성적인 것은 고요함으로써 남성적인 것을 이기고 고요함으로 자기를 낮춘다."(노자 6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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