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국제칼럼] 말과 글의 남북접근, 정부가 막으려는가 /권순익

올 예산 절반 삭감, 겨레말큰사전 편찬 사업무산 위기 처해

민족 동질화 외면한 정부 옹졸함에 아연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골샌님'과 '혁명가'란 말은 도저히 함께 갈 수 없는 것처럼 들린다. 그런데 이 말을 동시에 들은 사람이 있다. 3·1 운동후 중국으로 망명해 풍찬노숙(風餐露宿)의 독립운동 끝에 연안에서 결성된 독립동맹의 주석을 지내고 북한에서 김일성의 연안파 숙청 때 숙청당한 김두봉이 그러했다. 주시경의 제자였던 그는 화물선에 숨어 망명길에 오를 때도, 광복 후 조선의용군 4개 대대를 인솔해 연안에서 한반도까지 4700리를 행군해 온 후 소련군에 의해 무장해제될 때도 '조선말 사전' 원고뭉치를 끼고 있었다 한다. 부산 기장군 출신인 그의 외사촌 딸이 박차정 의사고 조카사위가 의열단의 영수 김원봉이다.

상해 망명 중에도 '깁더 조선말본'을 펴낼 정도로 조선말에 매달렸던 그를 두고 동지나 정적들이 붙인 별명이 골샌님이다. 그러나 그런 지독한 우리말 사랑이 오랜 분단에도 남과 북의 말과 글이 대체적인 동질성을 유지한 밑바탕이 됐다. 초기 북한정권의 2인자로 언어 정책을 총괄한 그가 남한에서 문교부 편수국장을 지내며 어문교육의 초석을 닦은 최현배와 맞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주시경의 문하에서 김두봉은 수제자, 최현배는 애제자로 병칭됐는데 경남 울산 출신인 최현배는 5살 손위이고 고향이 인접한 김두봉과 유달리 친했다고 한다. 김두봉은 최현배가 참가했던 조선어학회의 맞춤법통일안을 수용했고 그 결과가 차이는 적고 닮음은 많은 오늘날의 남북한 어문이 된 것이다.

김두봉과 최현배만의 관계뿐 아니다. 일제에 맞서 우리말과 글을 지키려던 조선어학회 멤버들 모두가 그렇게 얽히고설켰다. 일제가 조작한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옥중에서 사망한 이윤재와 한징도 그랬다. 이들이 우리말큰사전을 준비할 때 얼마나 치열하게 토론하고, 철저히 승복했던지 당시 서울 장안에선 "회의는 조선어학회처럼 하라"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고 한다. 해방 후 체제를 달리 선택했어도 같은 뿌리의 사람들이 한길을 닦았기 때문에 지금도 남한사람이 북한의 출판물을 읽고, 탈북자들이 남한의 책을 읽는 데 큰 불편을 느끼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분야에서 급속하게 이질화가 진행돼온 남북한에서 말과 글만 예외일 수 없다. 분단 45년 만에 합쳐진 독일만 해도 통일 후 통일독일어 사전을 펴내니 표제어 11만5000개 중 5%가 훨씬 넘는 6000여 개의 새 단어가 등록됐다고 한다. 더 심각한 건 같은 단어의 뜻을 서로 다르게 해석하고 서독 출신이 나(Ich) 너(Du) 같은 개인적 단어를, 동독 출신이 사람(man) 같은 집단적 단어를 더 선호하는 등 달라진 언어습관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동·서독이 함께 '괴테사전'을 만드는 등 언어적 접근작업은 계속됐는데도 그렇다.

우리도 남북한의 언어를 통합하기 위한 노력이 없었던 건 아니다. 국립국어연구원의 주도로 1991년도부터 중국의 장춘 베이징 등지에서 남북학자들의 만남이 이어지고 있고 국어 순화, 방언 문제 등에는 성과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연구 수행에 필요한 경비문제 등을 감안하면 결국은 우리 정부의 노력과 지원이 가장 중요할 수밖에 없다.
지난 4일 고은 시인이 호소문을 발표했다. 자신이 사업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이 무산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다. 지난 2004년에 남북사회문화사업으로 시작, 어휘 30만 개 수록을 목표로 남과 북의 언어학자들이 참가해 진행되는 이 사업에 대해 정부는 올해 예산 30억 원의 거의 절반을 삭감했다. 천안함 사건 등에 따른 남북경색의 여파라고 한다. 급여를 받지 못하는 연구용역자들이 떠나고 북에 연구지원비가 전달되지 않으면 사업 자체가 답보하거나 후퇴할 게 뻔하다.

천안함 사건 등을 놓고 북한정권에 분노하는 이는 많다. 그러나 분노하는 이들 중에서도 사전 편찬 지원을 줄이는 데 공감할 이가 몇이나 있겠는가. 나라 규모에 비하면 몇 푼에 불과한 돈을 지렛대 삼아 민족의 동질화작업을 외면하는 정부의 협량(狹量)엔 아연할 뿐이다. 남의 민족의 핍박 속에서 앞서 간 이들이 목숨을 내놓고 지킨 말과 글이다. 마침 그제는 한글날이었다. 남과 북의 그 많은 기념일 중에서도 유일하게 같은 명칭을 쓰는 날이 '한글날'이다.


[국제신문 공식 페이스북] [국제신문 인스타그램]
부산교통공사

 많이 본 뉴스RSS

  1. 1‘마늘’로 만든 춤, 인도네시아 간다
  2. 2출발 좋은 K7프리미어…사전계약 8000대 돌파
  3. 3아! 1타 차…박성현 아쉬운 메이저 준우승
  4. 4부산 유일 최우수 ‘호스피스 완화의료 전문기관’ 선정
  5. 5우정노조 총파업 투표 가결 여부 25일 판가름
  6. 6매직 갈라쇼부터 버스킹까지…세계 정상 마술사들 부산 달군다
  7. 7번호표 거래·가짜 수표 등장…“미계약분 분양 제도 개선을”
  8. 8학교 비정규직 내달 총파업 땐 학생에 빵·우유 제공
  9. 96월 모평 결과 나왔다, 이젠 유사 학과 분석해 합격 가능성 높여야
  10. 10말도, 탈도 많은 북구 명칭 변경…서명에 아파트 경비원까지 동원
  1. 1한국당, '국회 정상화 합의안' 추인 불발
  2. 26월 국회, '반쪽' 정상화…이달 내 추경처리는 사실상 무산
  3. 3‘세월호 유가족 징하게 해쳐먹는다’…차명진 의원 과거 막말 보니
  4. 4여야, 국회 정상화 전격 합의…80일 만에 정상 가동
  5. 5폼페이오, 북미협상 곧 재개 시사 "아주 진정한 가능성"
  6. 6김영춘 의원, 네이버의 지역언론 차별 해결책 요구
  7. 7"트럼프, 방한기간 DMZ 방문 검토 중"…북핵관련 메시지 주목
  8. 8여야대표 국회 정상화 합의 국회 80일만에 정상 가동
  9. 9“자사고 지정 취소 절차 적법성 중요” 당내서 부쩍 제 목소리 내는 김해영
  10. 10한국당, 삼척항 찾아 안보공세 강화
  1. 1출발 좋은 K7프리미어…사전계약 8000대 돌파
  2. 2번호표 거래·가짜 수표 등장…“미계약분 분양 제도 개선을”
  3. 3부산지역 관용차량 르노삼성차 사주기 전개
  4. 4UAE 한국형 원전 정비사업, 국내업체 ‘반쪽수주’
  5. 5“대기업 편법출점 골목상권 잠식…국회 뭐하나”
  6. 6부산해양수산발전포럼, 25일 한국해대서 열려
  7. 7어업재해율, 다른 산업의 최대 12배…‘30세 미만’ 사고는 평균의 3배 육박
  8. 8부산항 컨테이너 물동량, 작년에도 세계 6위 그쳐
  9. 9거창 흉물 미완의 숙박시설…공공임대주택 추진
  10. 10내년 강력 해양환경 규제…저유황유 확보 비상
  1. 1“피트니스 모델 류세비 아닌 뮤지컬배우 박혜민…” 오보에 질책 잇따라
  2. 2부산역 3층서 투신한 일본인 사업가 숨져… ‘51억 추징금’ 신변 비관 추정
  3. 3권성동 1심 선고… ‘강원랜드 채용비리’ 앞선 구속영장 기각 이유는?
  4. 4음주운전 처벌기준 25일부터 어떻게 강화되나, 벌금 최대 ‘2000만 원’
  5. 5감만2동 우암로 잇는 도로 27년만에 첫삽 뜬다
  6. 6음주운전 처벌기준 강화 ‘58년 만’… 최대 무기징역 구형, 면허 정지·취소 기준
  7. 7싸이 참고인 조사 양현석 전 대표 조만간 소환 조사
  8. 8술취한 40대 여성 8층서 창밖 내다보다가 추락사
  9. 92호선 지연 운행… “실검에 2호선 있는거 보니” “반대편 3번, 여긴 0번” 분통
  10. 10‘IMF 촉매’ 한보그룹 정태수 사망설 진실은… 아들 정한근 국내송환 ‘답은 곧’
  1. 1조지나 로드리게스 호날두와 함께한 휴가 “아모레 미오”
  2. 2부산 유일의 남자프로골프단 우성종합건설, KPGA 투어 개최
  3. 32019 코파아메리카, 아르헨티나-카타르전 메시 출격... 전반 1-0 종료
  4. 4부산 연고 첫 여자프로농구단 BNK썸농구단 창단
  5. 5정찬성 7개월 만의 재기… 58초 TKO 승리 ‘좀비처럼 부활’
  6. 6이동국, 얼굴로 받아낸 뜻밖의 ‘득점 찬스’ ... 개인 통산 최다골 219호골
  7. 7김진우 롯데 자이언츠 통한 국내 재기 불발… “입단 테스트 불합격”
  8. 8박성현 1타 제치고 생애 첫 LPGA 우승한 한나 그린은 누구?
  9. 9아! 1타 차…박성현 아쉬운 메이저 준우승
  10. 10'맹추격' 박성현, 아쉬운 1타 차 2위…우승은 그린
강동수의 세설사설 [전체보기]
새해 개천에서 용이 나려면
1919년 그리고 100년, ‘잡화엄식(雜華嚴飾)’을 꿈꾼다
강동진 칼럼 [전체보기]
2030엑스포 개최에 관한 간절한 소망
나는 느린 도시가 좋다
기고 [전체보기]
‘국가균형발전 2.0’ 이제부터 시작이다 /김종한
도로교통법 개정안, 소주 한 잔도 단속대상 /류해국
기자수첩 [전체보기]
회동수원지 오염만은 막아야 /신심범
어린이집 종일반 의무화의 이면 /황윤정
김용석 칼럼 [전체보기]
‘나이 듦의 미덕’이라는 어려운 과제
누구를 위하여 ‘경제의 종’은 울리나
김정현 칼럼 [전체보기]
기꺼이 불효를 저질렀습니다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국악, 월드뮤직을 꿈꾸며
진흙 속의 진주 국악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예술이란 이름으로 /정홍주
장애학생은 어디로 가야 하나 /최영지
도청도설 [전체보기]
논란의 스펙
BTS와 이우환
문태준 칼럼 [전체보기]
낭독의 문화
익산 팸투어의 감흥
박상현의 끼니 [전체보기]
영혼 적셔주는 시락국 한 그릇
우동, 일본은 면발 한국은 국물 중시
사설 [전체보기]
소규모 공장 밀집 서부산권 미세먼지 규제책 세워야
14년째 동결 절단장애인 보장구 보조금 불합리하다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정년, 노인 연령 기준 그리고 노인 복지
상대빈곤율 17.4%가 의미하는 것
이은화의 미술여행 [전체보기]
고흐보다 더 아파보였던 의사
누구나 독대를 꿈꾸는 명화
이홍 칼럼 [전체보기]
창의성, 한국기업의 다음 생존전략
파괴적 정쟁 역사의 데자뷔
장재건 칼럼 [전체보기]
부울경 시장·도지사의 바닥 지지율
양날의 칼 양정철
제언 [전체보기]
광안대교, 해양안전 감시시스템 구축을 /이윤석
조영석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플래툰과 현을 위한 아다지오
젊음과 신록의 계절 5월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이탈리아 와인의 다양성
와인 숙성과 설렘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1952년 부산 영도 해안
비오는 날 친구를 기다리다
  • 부산관광영상전국공모전
  • 시민초청강연
  • 번더플로우 조이 오브 댄싱
  • 유콘서트
  • 어린이경제아카데미
  • 어린이극지해양아카데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