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부산메디클럽

[시론] 지구인과 난민 /이명원

이주노동자도 우리와 같은 사람

전 지구적으로 보면 둘다 난민 아닌가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10-12 21:26:41
  •  |  본지 26면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주소복사
  • 스크랩
  • 인쇄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지난주 덕수궁에서 서울 북페스티벌이 열렸다. 저자 초청 토론회의 사회자로 참여했던 나는 그 행사에서 마붑 알엄이라는 방글라데시 출신 이주민을 만났다. 알고 보니 그는 영화배우였다. 이주노동자와 여고생의 사랑을 다룬 '반두비'라는 독립영화의 주연배우로 데뷔한 이후 현재는 이런저런 영화나 드라마에 단역으로 출연하고 있었다. 동시에 그는 '나는 지구인이다'라는 자전적 책의 저자이기도 했고, 현재는 한국인 아내와 결혼, 행복하게 살고 있는 인물이다.

이 젊은 영화인에게 한국이 처음부터 '기회의 나라'였던 것은 아니다. 그는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해 한국으로 온 이주노동자였다. 방글라데시의 대학생으로, 외국 유학을 꿈꾸던 젊은이를 이주노동자로 만든 것은 가난 때문이었다. 중병에 걸린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 '한국행'을 택했다. 당시 그가 갖고 있던 한국에 대한 지식은 분단국가, 전쟁의 위협 정도였다고 한다.

한국에 와서 그는 이주노동자가 겪어야 했던 모든 고통에 압축적으로 노출됐다. 고된 노동과 임금체불, 인종적·문화적 차별, 기약 없는 빈곤한 일상 앞에서 그는 절망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고국에서의 삶이 행복했던 것은 아니다. 인도계 방글라데시인으로서 그는 고국에서도 문화적 차별에 항상 시달렸다고 한다. 어떤 차원에서 보면, 그는 고국에서나 한국에서나 경계인이었고 소수자였던 셈인데, 그런 그에게도 꿈은 있었고 그 꿈이 그를 버티게 했다.

그가 발견한 꿈은 미디어였다. 그는 한국에 온 직후 이주노동자를 위한 사회운동에 참여하기도 했지만 반대와 대항운동만으로는 마음의 결핍을 이기기 힘들었다고 고백한다. 더 나은 운동방식이 없을까 고민하다 미디어를 통한 이주민의 권리찾기를 시작했는데, 그러면서 이주노동자 방송국에서 일할 기회를 얻고 이주민의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와 영화를 제작하기에 이른다.

그가 이 사회운동과 문화운동의 경험을 유창한 한국어로 고백하는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강조했던 것은 왜 이주노동자는 '말하는 주체'가 될 수 없는가 하는 문제 제기였다. 한국에는 이주노동자의 인권과 생존권을 지원하는 많은 NGO들이 있지만 대표들은 모두 한국인이었다는 것이다. 왜 이주노동자들은 보호'와 '지원'이라는 수동적 객체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지, 왜 선의를 가진 한국인들조차 이주노동자들을 '연민'의 대상으로만 보는지 납득하기 어렵더라는 것이다.

이런 생각이 그로 하여금 스스로 말하는 주체로 나아가게 만들었다. 그가 발견한 것은 영상미디어를 통해 스스로를 주체화할 수 있는 가능성이었다. 이주노동자 자신이 그들의 희망과 절망을 표현하는 영상물을 제작하고, 또 이주노동자인 자신이 이주노동자들의 삶을 담은 영화를 제작한 것은 이런 까닭이라는 것이다.

물론 나는 모든 이주노동자들이 마붑 알엄처럼 스스로를 주체화할 수 있는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조건에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늘의 한국사회에서 이주노동자들이 스스로를 주체화하기 위해서는 극단적으로는 강제추방까지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인신이 추방당한다고 해서 꿈마저 추방당하는 것은 아니다. 이주노동자도 한국인과 동일한 인간이며, "우리는 모두 지구인이다"는 그의 주장은 "노동자도 사람이다"는 1970년 전태일이 외쳤던 절규의 현대적 판본으로 내게 들렸다.
관객 중의 누가 물었다. 한국인에게 하고 싶은 말은 없는가. 마붑 알엄이 대답했다. 오늘의 지구화된 삶의 조건 속에서는 모든 인간이 난민이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생각했다. 나 역시 난민 아닌가. 일용할 양식을 벌기 위해 끝없이 이동하는 난민. 육아문제 때문에 서울을 떠나 소도시로 가야 했던 난민. 전세가격의 폭등으로 집을 구할 수 없어 처가에 짐을 부려야 했던 난민. 정주할 사상의 거처를 찾지 못해 이 책 저 책을 방황하는 난민.

물론 마붑 알엄이 말한 난민적 상황은 나의 소시민적 상황보다는 훨씬 비극적이다. 그러나 이 난민적 상황의 소시민성조차, 지구적 차원에서 전개되는 난민화의 일부를 이루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니 이 난민적 상황에 직면해 있는 우리 지구인들이 어떻게 서로에 대해 공감하지 않을 수 있으랴. 감정이입이란 이럴 때 필요한 덕목이 아닌가.

문학평론가

[국제신문 공식 페이스북] [국제신문 인스타그램]
  • 기사주소복사
  • 스크랩
  • 인쇄

승용차 요일제 가입은 이렇게
우리은행
많이 본 뉴스 RSS
  • 종합

  • 정치

  • 경제

  • 사회

  • 스포츠

교역 증가할수록 분쟁조정 전문인력 중요해질 것
지방분권…시민 힘으로
독일의 항만자치
지방분권…시민 힘으로
일본 후쿠오카 광역연합체
강동수의 세설사설 [전체보기]
작두 위의 무당, 문재인…더 삼가고 더 살펴라
‘올드 보이’ 각축장 된 지방선거, 그럼 부산은?
강동진 칼럼 [전체보기]
잠자고 있는 ‘초량왜관’을 깨울 시간입니다
지금 부산에 ‘제인 제이콥스’ 살고 있다면
기고 [전체보기]
지역성장 위기 극복, 분권형 균형발전이 답이다 /정현민
가슴속에 시 한 편 담고 삽시다 /강문출
기자수첩 [전체보기]
부산 핀테크 골든타임 /김미희
사연 있는 그림 하나쯤 /박정민
김용석 칼럼 [전체보기]
‘유투(YouToo)의 권력’이 잃어버린 것
열린 도시와 그 친구들
김정현 칼럼 [전체보기]
판사님, 내 그럴 줄 알았습니다!
판사님, 누가 약자인가요?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번듯한 공항 갖는 게 욕심인가 /이선정
한국당이 죽어야 보수가 산다 /윤정길
도청도설 [전체보기]
멍 때리기
파리와 찍찍이
문태준 칼럼 [전체보기]
자코메티와 걸어가는 사람
무문관 수행
박무성 칼럼 [전체보기]
‘올드 캠프’가 더 문제다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의 문턱
박창희 칼럼 [전체보기]
서부산 신도시, 누구를 위한 것인가
高手의 질문법
사설 [전체보기]
파국 피한 한국GM, 장기 경쟁력 확보가 과제다
로스쿨도 지역별 양극화…이대로 가도 되나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보육·요양 등 사회서비스가 좋아지려면
자영업 세입자가 마음 편히 장사할 권리
장재건 칼럼 [전체보기]
드루킹 사건의 본질이 뭐든
박근혜 선고를 기억하는 두 가지 시선
특별기고 [전체보기]
갑질과 배려- 6년간의 부산상의 회장직을 떠나며 /조성제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