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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의 세계 영화제 기행 <33> 이탈리아 베니스 영화제

1932년 창설, 가장 오랜 역사… 아시아영화 발굴·소개 큰 역할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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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0-08-24 19:42:48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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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차 세계대전 발발로 한때 중단되기도
- 1969년 시상제 폐지, 열기식자 1980년 부활
- 비상업 예술영화 중시

- 중국 ·일본·대만 감독 잇따라 황금사자상
- 한국 수상실적 미미… 1987년 출품 '씨받이' 강수연 여우주연상

- 2005년 이후에는 경쟁·비경쟁부문 모두 한 작품도 진출 못해


지난 1월1일부터 연재한 세계영화제기행의 마지막 여행 순간이 왔다. 총 33회에 걸쳐 37개의 영화제를 소개하였다. 심사위원으로 참여했거나 게스트로 초청받았던 많은 영화제가 있었지만 모두 다루기에는 한정된 시간이 걸림돌이 되었다. 지면을 빌어 미처 다루지 못한 영화제 집행위원장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 무엇보다 국제신문에 감사드리면서 졸고로 인해 신문사에 누를 끼치지 않았을까 염려하는 마음이 앞선다. 재미없고, 딱딱한 글을 참을성 있게 읽어주신 애독자들에게도 깊은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어쨌거나 마지막 기행장소는 3대 국제영화제 중 하나가 열리는 가을의 베니스다.

   
베니스국제영화제의 주 건물인 '카지노'.
베니스 마르코 폴로 공항 바로 옆에 있는 선착장에서 영업용 쾌속정인 '워터 택시'나 수시로 운항하는 배를 타면 40분 정도 걸려 리도섬에 도착한다. 매년 8월말에서 9월 초순. 이 작은 섬은 전 세계에서 몰려온 스타와 거장 감독들, 영화제작사 직원들, 취재를 위해 모여든 기자들로 북적거린다. 규모의 차이는 있지만 영화에 대한 뜨거운 열기는 78년 전인 1932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1999년 이후 2008년까지 10년 동안 한 해만 거르고 매년 이 뜨거운 열기에 젖었다. 이곳에는 영화제만 있는 것이 아니다. 2년마다 열리는 세계 최대의 미술축제인 베니스비엔날레를 보는 재미도 만만치 않다. 매년 10월에 개최하는 부산국제영화제 입장에서 본다면, 가장 바쁜 시기인 9월 초순에 열리는 베니스영화제에 참가한다는 것은 무리한 일정이다. 그러나 1999년부터 '거짓말'(1999), '섬'(2000), '수취인 불명'(2001), '오아시스'(2002), '바람난 가족'(2003), '빈집'(2004)이 매년 경쟁부문에 진출했기 때문에 짬을 내어 리도섬을 찾았다.

베니스국제영화제는 올해로 67회를 맞이했지만 1932년에 창설된 가장 오래된 영화제다. 78년 전의 일이다. 칸(63회), 베를린(60회)과 함께 세계 3대 영화제로 손꼽힌다. 베니스가 1895년부터 개최된 베니스비엔날레가 미술뿐 아니라 음악, 건축, 연극, 영화 등 각 분야를 포괄하는 종합국제예술제가 되어야 한다는 요청에 따라 비엔날레의 회장인 주세페 볼피 디 미수라타 백작의 주도 아래 영화제가 시작되었다.

   
2000년 9월 제59회 베니스영화제에 참가한 이창동(오른쪽) 감독 등이 기자회견을 갖고 있는 모습.
사무총장 안토니오 마리아니, 로마에 본부를 둔 국제교육영화원 사무총장이면서 베니스영화제 초대 집행위원장이 된 루치아노 데 페오가 1931년 국제현대음악제를 창설하였고, 1932년 8월 6일에는 국제예술영화제를 개최하였다. 이것이 시작이었다. 베니스 리도섬의 엑셀시오르 호텔 테라스에서 21일까지 개최된 첫 영화제에서는 프랭크 카프라의 '어느 날 밤에 생긴 일', 제임스 웨일의 '프랑켄슈타인', 알렉산드르 도브첸코의 '대지' 등이 상영되었고 그레타 가르보, 클라크 게이블, 빅토리아 데 시카 등 세계적인 배우와 감독들이 참석하면서 2만5000명의 관객들로부터 환영을 받았다. 공식시상은 없었지만 출품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투표를 통해 최우수 감독은 소련의 니콜라이 에크 감독('인생의 길')에게, 가장 재미있는 영화에는 르네 끌레르 감독의 '우리에게 자유를'이 뽑혔다. 1934년에 개최된 제2회 영화제(8월 1~20일)에는 19편의 영화가 상영되었고, 국제교육영화원에 의해 최우수 이탈리아영화와 외국영화 및 남녀주연상을 선정, 시상했다.

베니스영화제는 역사가 오래된 만큼 기복도 심했다. 격년제 영화제로 출범한 베니스는 1935년부터 매년 개최하는 영화제로 바뀌었고, 1937년에는 팔라조 델 치네마가 준공되면서 메인 행사장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1938년에는 국제경쟁제도를 채택하였다. 소위 경쟁영화제로 모양을 바꾼 것이다. 하지만, 무솔리니의 파시즘이 지배하던 1930년대에 비엔날레와 영화제는 선전도구로 전락했고, 1943년에서 1945년 기간에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영화제가 중단되기에 이른다.

전쟁이 끝난 1946년의 베니스영화제는 팔라조 델 치네마가 연합군의 본부로 징발되었기 때문에 베니스의 산마르코영화관에서 다시 열렸다. 1949년에 영화제는 리도섬의 팔라조 델 치네마로 귀환했고, 산마르코황금사자상이 제정되었다. 이와 함께 영화제는 정치색을 벗고, 품격을 높이면서 비상업적인 예술영화들을 집중 조명하기 시작했다.

특히 1950년대에서 1960년대에 이르는 기간 베니스영화제는 새로운 아시아영화를 발굴하여 소개함으로써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1951년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이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것을 비롯하여 1953년에는 미조구치 겐지의 '우게쯔 이야기', 1954년에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7인의 사무라이'와 미조구치 겐지의 '산쇼다유'가 각각 은사자상을 수상했다. 1957년에는 인도 사티야지트 레이의 '아푸 제2부-아파라지토'와 1958년 일본 이나가키 히로시의 '무호마츠의 인생'이 각각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1950년대의 베니스는 일본 영화의 주무대였다.
1969년 에네스트 G. 로라가 집행위원장이 되면서 각계 여론을 수렴, 시상제도를 폐지하기도 하였지만 1980년에 다시 부활했다. 현재 베니스영화제에는 경쟁부문을 이원화해서 중견감독들의 작품을 대상으로 하는 메인경쟁부문인 '베네치아 67'(뒤의 번호는 영화제 횟수를 따른다)과 젊은 감독들의 작품 위주로 새로운 영화의 흐름을 보여주는 오리종티, 단편경쟁 부문으로 나누어 시상한다.

메인경쟁부문은 최우수작품상인 황금사자상, 최우수감독상인 은사자상, 심사위원특별상, 볼피컵 남우주연상, 볼피컵 여우주연상, 신인연기자상인 마르첼로 마스트로야니상, 최우수각본상인 골든오셀라상, 기술공헌상인 오셀라상을 수여한다. 오리종티 부문에서는 장편과 다큐멘터리에게 오리종티상을 주고 있다.

시상제도가 부활된 1980년대 이후에도 아시아 영화의 수상은 계속 이어져왔다. 대만 허우샤오시엔의 '비정성시'(1989), 중국 장이모우의 '귀주이야기'(1992)와 '책상서랍 속의 동화'(1999), 대만 차이밍량의 '애정만세'(1994), 베트남 트란 안 홍의 '씨클로'(1995), 일본 기타노 다케시의 '하나비'(1997), 이란 자파르 파나히의 '순환'(2000), 인도 미라 네이어의 '몬순 웨딩'(2001), 중국 지아장커의 '스틸 라이프'(2006) 그리고 대만 이안의 '브로크백 마운틴'(2005)과 '색, 계'(2007) 등이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그러나 한국영화의 베니스 진출은 비교적 늦게 이루어졌고, 수상 실적도 미미한 편이다. 한국영화는 1961년에 신상옥 감독의 '성춘향'이 처음으로 베니스영화제에서 선보였고, 20년이 지난 1981년에 이두용 감독의 '피막'이 최초로 경쟁부문에 진출했다. 1987년 임권택 감독의 '씨받이'가 경쟁부문에 진출하여 강수연이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한동안 한국영화는 베니스영화제의 문을 두드리지 못했다. 그러던 중 토리노영화제의 집행위원장으로 있으면서 한국영화주간을 마련했던 알베르토 바르베라가 베니스영화제의 수장으로 부임하면서 한국영화가 다시 베니스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그가 한국영화에 미친 공헌은 컸다고 할 수 있다.

1999년 장선우 감독의 '거짓말', 2000년 김기덕 감독의 '섬', 2001년 다시 김기덕 감독의 '수취인 불명'과 송일곤 감독의 '꽃섬'이 연달아 경쟁부문에 올랐다. 알베르토 바르베라는 2001년 이탈리아 총선에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총리에 부임하면서 문화예술계의 수장들을 전격 사임케함으로써 베니스비엔날레 회장을 포함한 국영방송사 사장과 영화제 집행위원장 자리에서 함께 물러났다.

후임에 베를린영화제 집행위원장이었던 모리츠 데 하델른이 선임됐다. 이 시절도 한국영화는 활발하게 진출하였다. 2002년에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가 경쟁에 올라 감독상과 신인연기자상(문소리)을 수상했고, 2003년 제60회 영화제에는 임상수 감독의 '바람난 가족'이 메인경쟁부문인 '베네치아60'에, 김현성 감독의 '나비'가 신인감독들의 비평가주간에 선정되었다. 2004년에는 김기덕 감독의 '빈집'이 공식경쟁부문에 진출하여 감독상을 수상했고, 2005년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가 공식경쟁부문에 올라 '젊은사자상'을 수상했다.

현재의 집행위원장인 마르코 뮐러는 1953년 로마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동양학, 문화인류학을 전공한 후 중국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중국 통'이다. 1978년부터 영화평론가, 영화제 큐레이터, 베니스영화제 프로그래머 등을 역임했고, 페사로영화제 집행위원장(1989), 로테르담영화제 집행위원장(1989~1991), 로카르노영화제 집행위원장(1991~2000)을 역임한 후 2003년부터 모리츠 데 하델른의 뒤를 이어 베니스영화제의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다.

   
2006년에 '짝패', 2007년에 '천년학'과 '검은 땅의 소녀와'가 소개되었지만, 2005년 이후 5년간 한국영화는 경쟁부문은 물론 비경쟁부문에서도 선정되지 못하고 있다. 올해 제67회 영화제 또한 한국영화는 경쟁부문 진입에 실패했고, 김곡과 김선 형제 감독의 '방독피'가 오리종티 부문에, 홍상수 감독의 '옥희의 영화'가 같은 부문 폐막영화로 선정되었다.

최근 한국영화 감독이나 제작자들이 영화제를 목표로 영화를 만들거나 영화제에서의 상영을 바라는 현상이 늘고 있다. 칸, 베를린, 베니스뿐 아니고 그 밖의 영화제의 개최일정과 성격을 치밀하게 분석한 후에 접근하는 것이 보다 현명할 것이다. 가장 오랜 전통을 지닌 베니스에서 한국영화가 개가를 올릴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 끝 -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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