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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언 교수의 `건축, 시로 쓰다` <17> 한국해양대 국제교류 협력관

그곳에 서면 사람도 풍경이 된다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10-18 20:08:19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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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를 향해 활짝 열린 공간
- 갈매기 울음도 바람과 물결소리 그리고 하늘까지도 속속들이 한 몸
- 국제교류협력관 '바다마당' 서면 시각을 넘어 촉각체험까지 자연의 혜택 누려

- 1, 2층 유리 장치 억세고 거친 주변 방파제와 어울리지 못하고
- 건물 뒤쪽 면 노출콘크리트 어설픈 처리는 흠

   
한국해양대 국제교류협력관의 옥외 공간. 전경을 차지하는 바다와 그 앞에 선 사람이 하나로 어우러져 '사람이 풍경이 되는' 순간을 연출한다. 몸으로 건축물을 느끼는 촉감체험도 가능케 한다. 건축사진가 조명환
한국해양대학교 국제교류협력관은 이 대학과 부산항만공사가 국제행사 및 학술발표를 위한 세미나실과 연회실 등을 공동 이용한다. 건축가 안성호(시반건축사사무소)의 작품이다. 설계기간은 2007년 3~7월이다. 이 건축물은 바다로 향해 열린 공간이 인상적이다. 그래서인지 상상을 자극시킨다.

이 건축물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벌써 두 가지 체험을 한다. 건축물 내에서 무한히 바깥으로 뻗어나가면서 동시에 풍경이 되는 상상적 체험을 하고 있다. 새 소리, 날개 소리, 바람 소리, 물결 소리와 하나가 되어 마당 전면에 보이는 바다를 건너 컨테이너 부두를 경유하여 장산 너머까지 미치고 있다. 다른 하나는 내가 그 안 어느 곳에 풍경으로 피어난다는 것이다. 아래 시는 나의 두 가지 체험을 설명하는데 딱 맞다.

"방 안에 있다가/숲을 나갔을 때 듣는/새 소리와 날개 소리는 얼마나 좋으냐!/저것들과 한 공기를 마시니/속속들이 한 몸이요/저것들과 한 터에서 움직이니/그 파동 서로 만나/만물의 물결/무한 바깥을 이루니…" (정현종, '무한바깥') 이 시를 이렇게 바꿔 쓰고 싶다. "방 안에 있다가/바다를 향해 나갔을 때 듣는/갈매기 소리와 날개 소리는 얼마나 좋은냐!/저것들과 한 공기를 마시니/속속들이 한 몸이요/저것들과 한 바다에서 움직이니/그 바닷물결 서로 만나/만물의 물결/무한 바다를 이루니…"

■ 자연이 주는 혜택을 최대한 누리고자

국제교류협력관 내 '바다마당'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나는 풍경으로 피어난다. 정현종의 시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나'를 읊조리고 싶다. "사람이/풍경으로 피어날 때가 있다/앉아 있거나/차를 마시거나/잡담으로 시간에 이스트를 넣거나/ 그 어떤 때거나//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날 때가 있다/그게 저 혼자 피는 풍경인지/내가 그리는 풍경인지/그건 잘 모르겠지만//사람이 풍경일 때처럼/행복한 때는 없다"

내가 '무한바깥'에서 이성적으로만 그렇게 있는 것만 아니다. 내가 망각하고 있는 무한바깥의 깊은 세계에 들어가 그것과 어울려 하나가 되는 '촉각체험'을 한다. 하이데거는 이를 전기에는 '저기-존재(Da-sein)'로 했고 후기에는 사역(fourfold)이라 불렀다. 나를 그냥 여기다 두고 하늘, 땅, 전통, 내가 섞이는 사역 깊숙이 들어가 만지고 대화하는 행위는 '접촉'을 통해 촉각적으로 하나가 되는 어우러짐이다. 하여튼 시심(詩心)은 사역에서 나온다. 사역을 통해 무한바깥에 있는 것들과 대화를 나눈다. 그 때는 사역과 한 통속이 되어있어 대화 내용을 감지하지 못 한 채 나는 그냥 내게로 돌아온다. 나는 느끼지 못 했던 것을 곰곰이 다시 생각함으로써 사역과 새로운 감각으로 만난다. 이것은 바로 예술의 원천이 된다.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나는 것은, 즉 '그 바닷물결 서로 만나 만물의 물결 무한한 바다를 이룬' 곳에서 풍경으로 피어난다는 것은 나는 여기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저기 풍경'으로서 시각적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다. 저기서 시각적 존재로 태어남은 가슴 두근거리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사람이 풍경일 때처럼 행복한 때는 없다. 나는 이미 항상 저기에 망아(忘我)로 존재하므로, 무한의 바다를 이미 촉각적으로 안다. 거기에는 시각적 풍경이 인간의 기억과 상상을 거쳐 피어난다. 무한의 바다를 촉각체험을 하지 못했으면 풍경으로 태어나지조차 못했을 것이다.

2, 3층의 하늘마당, 하늘공연장, 전망데크는 무한의 바다를 촉각체험하는 곳이다. 4, 5, 6, 7층의 중정은 하늘의 기운을 받아들이는 곳이다. 하늘마당이 수평적 기운의 흐름이라면 이 건축물의 중정(中庭)은 수직적 기운의 흐름이다. 하늘만 체험할 수밖에 없다. 하늘마당, 하늘공연장, 전망데크에서는 '저기-존재'를 체험할 수 있고 풍경으로 태어날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실들은 수직적, 수평적 상호관입이 거의 없다. 이 건축물의 특징은 마당, 데크 등을 통해 외부와 내부의 상호관입이다. 이것은 주어진 자연의 혜택을 최대한 누리자는 의도인 것 같다. 자연이 인간에게 많은 혜택을 줌에도 우리 자신들은 얼마나 자주 그것을 망각하고 있나?

■ 시각을 넘어 촉각체험으로

   
한국해양대 국제교류협력관 주 출입구 쪽 모습.
시인 박재삼은 '햇빛의 선물'에서 이렇게 읊는다. "시방 여릿 여릿한 햇빛이/골고루 은혜롭게/ 하늘에서 땅으로 내리고 있는데,/따져보면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무궁무진한 이 선물을/그대에게 드리고 싶은/마음은 절실하건만/내가 바치기 전에/그대는 벌써 그것을 받고 있는데/어쩔 수가 없구나/다만 좋은 것을 받고도/그저 그렇거니/잘 모르고 있으니/이 답답함 어디 가서 말 할거나"

사역은 이미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촉감체험으로 모든 것이 주어지건만 우리는 그것을 망각하거나 느끼지 못하고 있다. 이미 주어진 것을 어떻게 드러낼 것인가? 그것이 문제다. 풍경으로 피어난다는 것은 사역이 되어 배경이 되었다가 그 속에서 체험한 시각을 전경으로 들어 올리는 것이다. 배경이라는 촉각체험이 시각적 전경의 바탕이 되는 것이다. 거꾸로 말하자면 시각적 전경을 통해 배경인 촉각체험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다. 전경에서 배경체험이 가능한 것이다. 건축물 안에 주위의 것들이 내부로 관입하면 외부에 대한 촉각체험이 가능한 것이다. 더군다나 바다가 건축물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면 바다, 하늘, 전통, 인간의 상호관입에 의하여 비빔밥처럼 비벼진 그것을 통해 촉각체험이 가능해진다. 이 사역에 의하여 비벼진 것은 촉각체험을 가능케 하고 이것이 시각체험의 바탕이 된다. 그래서 인간은 풍경으로 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촉각체험을 바탕으로 하여 돌, 나무, 산, 시냇물 등등을 체험적으로 기술할 수 있다. 돌이 되었다가, 나무가 되었다가, 산이 되었다가, 시냇물이 되었다가. 이러한 '됨'을 바탕으로 우리는 시각적인 것을 얻게 되는 것이다.

루이스 칸이 "벽돌아 너는 무엇이 되고자 하는냐?"는 말을 던졌을 때 이미 벽돌의 배경을 감지하고 있었고 그 안에서 어떤 형태를, 즉 어떤 전경이 되기를 원하는가를 벽돌에게 물었던 것이다. 건축가가 촉각체험을 통해 이미 이 세상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촉각체험이 상실된다면 시심이 사라지고 전경만 보는 자로 전락한 것이다. 배경을 상실한 인간, 참으로 비참하다. 촉각체험 속에서 건축을 행하는 자, 그야말로 행복한 자이다. 이 건축물에서 가장 잘 된 점은 사랑마당 등을 통해 배경을 끌어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 리듬감 있지만 어울림·센스 면에선 아쉬움도

이 건축물은 리듬감 있는 루버의 설치는 돋보이나 방파제 구조물(테트라포드)과의 어울림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 그 구조물이 억세고 거친 야성의 느낌을 줌에도 건축물 1, 2층의 마감을 유리로 처리한 것은 만족할 만한 센스가 아니다. 그리고 유리부분(하부)과 방부목(상부)과의 분리를 극복하기 위해 배가 볼록한 얇고 긴 유리박스를 설치하여 전자와 후자의 통합을 위한 장치로서 사용하나 너무 설렁하고 어색한 느낌을 준다. 설렁함은 아마 유리 부분과 인접한 방파제 구조물과의 대비 때문인 듯하다. 건축물이 왠지 아래 부분이 허한 듯하다. 건물 뒤쪽면의 노출콘크리트와 방부목 사이의 관계설정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구태의연한 창문내기가 답답한 감을 준다.

한편 평면을 살펴보면 2층의 하늘마당을 계단참이 여러 개 있는 계단으로 올라와 주출입구를 향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 학교식당의 브리지를 통해들어 오는 방법이 있다. 2층에는 다목적실, 관리실 등이 있다. 3층에는 전망테크 2실, 다목적실 2실이 있다. 4층에는 중정, 가족실, 2인실 등이 있다. 5, 6층은 4층과 유사하다. 7층은 강의실, 강사대기실 등이 있다. 4층의 중정은 5, 6, 7, 옥상층까지 열려있다.

   
이동언 부산대 건축학과 교수
중정을 통해 실(室)들의 배경이 중정임을, 즉 자연임을 지각한다는 것은 전경 속에 갇혀 있는 인간들을 해방시키는 것이다. 하늘, 바다, 전통, 인간의 일원이 되어 우리 인간이 시각적 전경 속에서 벗어날 때 참된 자유가 돌아온다. 전경은 오로지 환상이다. 풍경처럼 말이다. 하늘, 바다, 전통이라는 동일한 재료를 인간이 집단의 꿈과 기억을 가지고 비빔밥처럼 비비는 것이다. 이 바탕에는 패턴으로 이뤄진 촉각이 있다. 이를 체험하는 것 촉각체험이다. 이 촉각체험이 바탕이 되어 개인의 꿈과 기억이 첨가되어 다시 비빔밥처럼 비벼지므로 인간은 풍경으로 피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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