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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 大 트레일을 연다 <9> 영덕 블루로드(하)

[창간 63주년 특집] 통일전망대 ~ 부산 650㎞

바다는 꿈틀대며 바람을 일으켰고 숲은 조용히 길을 내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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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와 닮은 축산항, 시누대 천지 죽도산, 갯바위 틈에 숨은 작은 해수욕장
- 대게 원조 차유마을 예로부터 물산 풍부, 방어쌈 지투짬 등 지명이 증명해
- 풍력발전기 바람춤에 바람의 언덕 장관
- 높지않은 고불봉 천혜의 영덕 한눈에

영덕 대소산에서 굽어본 블루로드 해안길. 왼쪽 해안에 솟아오른 봉우리가 축산항의 죽도산이다.
"행복 해파랑길이군!" "여기선 말시키지 마. 젖어들어야 하니까."

블루로드를 따라 걸어 내려올수록 도보탐사팀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행복 호르몬이 샘솟는 듯하다. 보보유경(步步遊景) 즉, '내딛는 발걸음마다 기분 좋은 감동을 새긴다'는 선인들의 말씀이 이런 경지일까. 게다가, 없는듯 아닌듯 하면서도 길 위에 녹아있는 이야기가 은근히 많다.

■코딱지만한 백사장

영덕 경정리의 원조대게탑.
축산항에서 출발한다. 생김새가 소와 같아서 축산(丑山)이라 불렸다는 곳. 축산 옆의 말미산은 말(馬)을 품고 있으니, 소와 말이 축산항을 지키는 셈이다. 축산항은 어촌문화를 잘 간직해 행정안전부 지정 '푸른 바다마을'로 돼 있다. 축산항 동쪽으로 죽도산(竹島山) 해안을 끼고 도는 둘레길이 뚫려 있다. 시누대 천지다. 이 대나무로 수백년에 걸쳐 영해부에서 화살을 만들고 나라에도 진상했다고 한다.

"어? 하수오가 남아 있네. 없어진 줄 알았는데…" 동행한 영덕군청 강영화(관광개발담당) 계장이 놀란 표정을 짓는다. 하수오는 잎 모양이 하트처럼 생긴 덩굴성 다년생 초본으로, 백발도 검어지게 한다는 자양강장제로 알려져 있다. "영덕에 이 식물이 많았는데, 정력에 좋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외지인들이 다 캐가 버렸니더. 멸종위기라 카니더." 누구를 탓해야 할까. 걷는 이들의 에티켓을 생각케하는 장면이다.

죽도산의 목재 덱 보도를 따라 돌아나오자 인도 전용 현수교가 눈앞에 나타난다. 탐사팀이 부러운 시선을 보이자 강 계장은 "이제부터 환상의 바닷길로 접어든다"고 말한다. 갯바위 해안에 초소길이 나 있다. 초병 없는 초소가 군대시절의 한때를 떠올리게 한다.

갯바위 틈에 '코딱지만한' 백사장들이 숨어 있다. "저기서도 해수욕을 하니더. 두 명이 텐트 치면 꽉 차니더. 아마 한국에서 가장 작은 해수욕장이 아닐지…."(강영화 계장)

■대게 원조마을

풍력발전단지에 들어선 캡슐형 하우스.
갯바위길을 오르내리는 것도 별미다. 길을 굽이돌 때마다 불쑥 나타나는 아담한 어촌마을과 초승달 모양의 해변들이 정겹다. 걷기 삼매경에서 기분좋게 빠져나오자 차유마을이다. 영덕 대게 원조마을로 불리는 곳이다. '정말 원조가 맞나?'하고 의문을 표하자, 강 계장이 바닷가의 '영덕대게탑'을 가리킨다.

차유마을 김수동 이장(65)은 "마을 앞바다에 대륙붕이 발달해 좋은 대게 서식환경을 갖췄지. 맛도 최고야. 딴 데 하고는 비교가 안돼요. 조상대대로 여기서 대게를 잡아왔으니 원조지"라며 한껏 자부심을 드러낸다. 90가구가 옹기종기 사는 차유마을은 대게 덕에 부자동네라고 한다.

"대게가 되게 비싸유. 큰 박달게 한 마리가 15만 원 정도 하니까 쌀 한가마값이니더. 물론 수입게는 그보다 휠씬 싸지만 맛이 안나고. 강구항의 전문업소도 잘 하지만, 진짜 맛을 보려면 차유마을에 와야 하니더."(강영화 계장)

이 지역은 옛날부터 물산이 풍부했다. 방어가 많이 잡혔다는 방어짬, 돌매라는 사람이 미역을 따던 돌매방우, 상어와 비슷한 지투가 많다는 지투짬 같은 지명이 그걸 말해준다. 경정항~석리 가는 길에선 군소나 성게도 가끔 만난다. 경정3리에는 특이한 '오매향나무'가 있는데 수령이 자그마치 500년이다. 무성한 뿌리와 가지가 바위산을 휘감고 있다. 석리를 지나 오보, 대탄을 돌아나오니자 해맞이공원이다.

■바람의 언덕

블루로드에 내걸린 각 단체의 안내리본.
블루로드 A코스는 테마가 '바람'과 '숲'이다. 바람의 언덕에 풍력발전기가 씽씽 돌아가고, 수평선 너머에선 쉼없이 바람이 불어온다. 바람의 언덕을 지나면 아늑한 숲길의 연속이다. 해맞이공원~풍력발전단지~고불봉~강구항까지 17.5㎞(약 5시간 소요)가 도무지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해맞이공원 뒤편 산등성이에 들어선 풍력발전단지는 영덕의 새로운 관광명소다. 24기의 풍력발전기들이 만드는 '바람춤'이 장관이다. 높이 90m의 풍력발전기가 대게 다리같은 거대한 날개를 돌리는 모습은 신기하기까지 하다. 여기서 생산되는 연간 9만6680㎿의 전력은 영덕 군민 전체가 사용할 수 있는 양이다. 최근 신재생에너지관이 문을 열어 볼거리가 더욱 풍성해졌다.

영덕군에서 운영하는 이곳 캠핑장의 캡슐 하우스에서 하룻밤을 잤는데 독특한 경험이었다. 휙휙~ 발전기는 밤새 돌아갔다. 이를 본 박정애 시인은 "칼로 바람을 자르는 소리"라고 했다. 바다는 밤새도록 꿈틀거리며 바람을 일으켰고, 새벽녘에 거대한 햇덩이를 뽑아올리고서야 잠잠해졌다.

■높지 않은 고불봉

고불봉. 무슨 뜻인가 했더니 높지 않다(高不峰, 235m)는 산이란다. 뜻을 알고는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바람의 언덕을 벗어나 임도를 따라 또박또박 고불봉에 오르자 장관이 펼쳐졌다. 낙동정맥의 산군들이 굽이치는 모습하며, 동해의 일망무제, 그리고 풍력발전단지, 축산항, 죽도산, 오십천 등 영덕의 동맥 정맥 어깨 가슴들이 한 눈에 들어왔다.

"이름 한번 멋지네. 자연의 겸손 같군."

"나직한데도 기상이 있어 보여. 주변의 산들이 전혀 위압적이지 않고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친구 같아."

정상이랄 것도 없는 정상에 오른 탐사팀이 놀라서들 한마디씩 한다. 1636년 병자호란 때 왕을 호종하지 않았다는 모함으로 영덕에 유배된 고산 윤선도(1587~1671년)는 고불봉을 이렇게 읊기도 했다. '…어디에 쓰이려고 그렇게 구름 위 달 쫓아 홀로이 외롭게 솟았나(何用孤高比雲月)/ 아마 좋은 시절 만나 한번 쓰일 때는 저 혼자 하늘을 떠받치는 기둥이 될 것이네(用時猶得獨擎天)'. 고산은 고불봉에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 듯하다.

고불봉에서 남쪽을 굽어보니 강구항까지 이어진 능선길이 발길을 유혹한다. 산등성이를 따라 오르내리는 길의 율동감이 경쾌하다. 예쁜 오솔길도 가끔 등장한다. 걷자니 아깝다.

강구항에 닿았다. 강구(江口)는 강의 입이자 바다의 문이다. 오십천과 동해가 어우러져 물산이 풍부하다. 대게철(11월~이듬해 5월) 강구는 외지의 차와 사람들로 미어터진다고 한다. 그땐 블루로드도 왁자지끌해질 것이다.
# 영덕군청 강영화 계장

- 블루로드 낸 주역… "달맞이 야간산행 꼭 참가해 보세요"

경북 영덕군청의 강영화(46·사진) 계장(관광개발담당)은 블루로드를 낸 주역이다. 이름을 지었을 뿐만 아니라, 코스도 대부분 그가 잡았다고 한다.

"올레길 밖에 생각하지 못하고 있을 때, 색다르게 이름을 붙여보자고 했니더. 여긴 푸른 바다와 숲이 좋으니까 '블루', 내친 걸음이라 '로드'(길)라고 붙였니더. 짓고보니 괜찮다는 소리를 듣니더."

강 계장은 필더형 공무원이다. 확인할 게 있으면 무조건 현장에 간다. 안내를 부탁하면 직접 달려나온다. 길 안내도 적당히 하지 않고 함께 걷는다. 만나본 기자들은 그를 '블루로드 계장'이라 부른다.

"길 내는 거요, 그거 되게 재미 있니더. 그동안 강구에 와서 대게만 먹고 갔는데, 길을 만들어 놓으니까 머물기도 하니더."

블루로드 개통 이후 체류형 관광이 늘고 있다고 한다. 블루로드에는 주중에는 하루 평균 500여 명, 토·일요일에는 1000여 명이 전국에서 찾아온단다. 강 계장은 "여기 오는 사람은 배낭 가져오지 말라고 한다. 그래야 영덕에서 밥도 사 먹고 잠도 자고 할 게 아니냐"며 털털하게 웃었다.

강 계장은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 열리는 '달맞이 야간산행'에도 꼭 한번 참가해보라"고 귀띔한다. 창포분교를 출발해 봉수대-풍력발전단지-창포 물양장에 이르는 총 7.7㎞ 코스인데 인기가 보통이 아니라고 한다(참가비 없음). 그는 "달이 떠오르면 동해의 은물결이 풍력단지 날개에 닿는 듯한 환상의 세계가 열린다"고 설명했다.

영덕군은 올해 7억 원을 들여 화장실과 쉼터 등 편의시설 6곳을 설치하고 탐방로를 정비했다. 강 계장은 "2012년까지 모두 40억 원을 들여 아스팔트 구간은 줄이고 갯바위길은 확대해 블루로드를 더욱 운치있고 안전하게 다듬어 놓겠다"고 했다.


※ 국제신문·(사)걷고싶은부산 공동기획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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