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물녘 어느 주점. 오랜만에 만난 우리 세 사람의 신경은 온통 건너편 탁자에 가 있었다. 장사를 하다 말고 온 듯 구깃구깃한 바지 위에 전대를 두른 여자와 막걸리병과 함께 탁자에 올라 앉아 있는 헬멧의 주인인 남자. 그들의 표정과 분위기는 금세 활활 불타고 있는 곳으로 진화를 위해 달려가야 할 소방관들처럼 심각하고 조급해 보였다.
나는 그들을 등지고 앉아 있었는데 건너편 탁자를 마주보고 앉은 후배는 복화술을 익힌 사람처럼 그들의 모습을 실시간 중계 했다. "심각함다. 아조아조 심각해 보임다." 후배의 재밌는 어투와 몸짓에 우리는 그들의 심각함을 재미삼아 즐기고 있었다. 남자가 막걸리를 한 잔 쭈욱 들이켰다는 것, 여자는 시종일관 고개를 숙이고 있다는 것 등 그들의 모습을 안 봐도 후배를 통해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뭔 일이 곧 벌어질 것 아…" 거기까지 말한 후배가 자신의 뺨에 손을 갖다 대고 말이 없었다.
남자가 여자의 따귀를 때린 것이다. 내가 그들을 보려고 고개를 돌린 것과 동시에 남자가 일어섰다. 그러더니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 여자의 얼굴을 두 손으로 받치고 오랫동안 입을 맞추는 것이었다. 우리는 "아조아조 아름답슴다" 라는 후배의 말을 끝으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주점에서 보았던 중년의 남녀와 함께 '사랑은 무엇인가?' 라는 아주 진부하고 식상한 질문이 떠오른 건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사랑을 생각하다'라는 책을 꺼내들면서부터였다. 이 책은 이상적인 작가의 자세를 견지하고 있는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사랑과 죽음에 관한 에세이집인데 글 속에서 쥐스킨트는 세 가지 사례의 사랑을 언급하고 있다. 그들의 사랑은 분별없고 맹목적이다. 사랑에 빠진 사람과는 합리적인 토론이 불가능하고 사랑은 일종의 병이고 독이라 설파한다. 여기에는 남녀의 열정적인 사랑, 부모의 자식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 종교나 조국을 향한 성스러운 사랑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가장 위대하고 고귀한 것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기 때문에 인간에게 일어날 수 있는 최고의 멋지고 아름다운 일이라는 사실도 인정해야 된다는 것. 이쯤에서 '사랑은 무엇인가?' 라는 고민은 깊어진다. 이 문제에 대해 쥐스킨트는 스탕달, 플라톤, 소크라테스, 오스카와일드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조언을 구한다. 그리하여 명저에 담긴 대문호들의 타나토스와 에로스에 대한 견해를 엿보는 즐거움도 함께 전한다.
사랑과 죽음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쥐스킨트가 차용해 온 것은 오르페우스의 신화이다. 재미있는 것은 전 인류를 대상으로 사랑을 전파하는 예수와 한 사람만을 사랑하여 죽음의 세계로까지 발을 들여놓는 오르페우스의 사랑과 죽음을 비교한 대목인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치밀하지 못하고 사랑에 분별력이 없고 실수를 저지르는 오르페우스를 쥐스킨트는 우리와 닮은 완전한 인간이었다고 말한다. 너무나 인간적이어서 아름다워 보였던 주점의 그 중년 남녀의 사랑이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춥다. 그 실체를 좀체 알 수 없지만, 피부에 와 닿는 이 알싸한 찬 기운을 덮을 만한 말 중에 '사랑' 외의 것을 나는 모르겠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