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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메디클럽

사투리의 미학 <1> 부산사람, 부산말

생생한 삶의 현장 복원하는 `살아있는 언어`

그릇된 국어정책 '사투리=열등언어' 폄훼

표준말·부산말 뒤섞인 '이상한 언어' 양산

투박한 억양도 상황따라 정감 깃든 말로

  • 이근열 교수
  •  |   입력 : 2004-08-31 20:42:41
  •  |   본지 3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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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분권시대를 맞아 부산의 문화와 역사, 정신이 응축된 사투리의 가치를 되살리는 작업이 요구되고 있다. 사진은 산과 바다로 둘러싸인 부산시 전경.
사투리는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현재의 자원이다. 부산 사투리는 부산 사람들의 삶의 반영물이며 영원히 마르지 않는 정신의 샘인 것이다. 그 속에는 부산의 역사와 수천년간 갈고 다듬어진 지혜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한 지역의 말은 그 지역의 문화와 정서가 응축돼 있지만 획일적인 정책으로 인해 쓸모 없는 말로 전락하고 말았다. '사투리 죽이기'로 일관된 정책은 우리말의 다양성이나 역사성, 아름다움과 매력마저 버리는 우를 범했다.

본지는 이같은 국어정책의 잘못을 바로 잡고 지방분권 시대를 맞아 지역의 문화 정체성 찾기 차원에서 '사투리의 미학'을 기획했다. 이번 기획에서는 오랜 역사를 지닌 사투리의 가치를 발굴함으로써 앞으로도 영원히 자손에게 물려줄 자랑스런 문화유산이라는 점을 확인하고자 한다. 말의 뿌리를 찾는 일부터 경제성과 해학성, 그 속에 담긴 사고방식 등 사투리와 관련된 모든 사항을 세세히 점검하고 앞으로의 활용방안까지 모색해 본다.


부산에 사는 부산사람은 부산말을 하고 산다. 어머니의 말을 들으며 흉내를 내고, 동네 친구들과 노는 동안 부산말을 깨우치며 자란다. 운명적으로 부산말을 배우고 일생 동안 함께 삶을 영위한다.

"잘가라"는 말보다 "잘가래이"에 녹아 든 긴 여운 속에서 할머니의 따뜻한 품안을 기억하고, "얌생이 몰다"라는 익은 말 속에서 미군 구호물자를 훔치던 가난했던 시절의 아픈 상처를 생각해 낸다. 또한 다양한 높낮이 속에서 남포동 선창의 떠들썩하고 힘찬 얼굴을 떠올리고 자갈치 아지매의 억센 삶을 이해한다.

이처럼 부산말에는 부산 사람의 삶이 녹아 있으며 역사가 담겨 있다. 부산말을 이해한다는 것은 말 속에 녹아 있는 부산의 삶을 이해하는 것이요, 부산의 역사를 이해하는 일이다. 이는 곧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을 의미한다. 더 나은 삶을 추구하고 삶의 행복감을 높이는 것은 자기 정체성이 확립된 이후에 가능하다. 그러나 우리는 학교에서 어색한 표준말을 배우고 이상한 억양으로 이를 흉내내고 있다.

요즘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글을 읽히면 표준말과 부산말이 뒤섞인 이상한 억양의 발음이 나타난다. 평소에는 부산말을 쓰다가 특정한 상황에서는 표준말을 쓰는 등 이중의 언어생활을 하고 있다.

학교의 표준말 교육은 서울 외의 지방말은 버려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지역어에 대한 차별 정책으로 표준적인 한국어에서 벗어난 말은 '버려야 할 유산'으로 여기게 되고 은연중에 열등감에 시달릴 가능성이 있다.

   
부산 사투리의 보고인 자갈치 시장에서 매년 열리는 '부산 자갈치축제' 모습.
표준어는 만들어진 언어로 우리말의 체계와 역사를 이해하고 한국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부산을 이해하고 부산사람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가 부산말을 이해하고 지켜나가는 것은 바로 부산사람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일인 것이다.

요즘 들어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 특정 지역어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지방분권화에 따른 지역 사람들의 부상과 정치의 중심세력으로 부각한 젊은 세대로 인해 지역에 대한 자기 동질감이 확대됐다. 지방에서 올라온 새로운 정치세력이 정치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적극 노력한 결과로, 출신 지역의 언어를 여과 없이 사용해 지역 사람들의 호응을 극대화했기 때문이다.

특히 동서로 분화된 정당 구도는 이러한 지역어의 관심을 고조시키고 있다.

지역어가 관심의 대상이 된 또 다른 이유는 지역어의 색다름과 특이성이 호기심을 유발하고 이것을 상업화시키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영화 '친구' 이래로 부산말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많은 대중 매체에서 이를 흥행의 필수 요소로 채택하기도 했다. 영화 '남남북녀' '황산벌' '위풍당당 그녀' '선생 김봉두' '목포는 항구다', 드라마 '명랑 소녀 성공기' '피아노' 등에서 지방말이 인기를 끌었다. 특히 '황산벌'은 경상 전라 평안도의 말을 대사로 사용해 사투리의 멋을 한껏 살려 놓았다.

노랫말이나 오락 프로그램에서도 사투리는 호소력을 띤다. 가수 강산에는 '명태'를 함경도 말로, '와 그라노'를 경상도 말로 노래했다. '개그콘서트'에서는 '생활 사투리'를 통해 여러 지역말을 비교 소개하고, '폭소클럽'에서는 강원도 말이 소개되었다. 개그맨 김제동과 강호동은 경상도 말을 사실적으로 사용하지만 다른 개그맨보다 인기가 높다.

이처럼 영화나 드라마, 가요, 오락 프로그램 등 대중 매체에서 지방말이 각광받는 이유는 표준어 교육에 따라 획일화된 문화에 대한 거부감에서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신세대로 상징화된 인터넷 세대는 '낯섦에서 오는 신선한 충격'을 흥미롭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동일 지역의 신세대는 자신들의 언어에 대한 동질감으로 인해 정체성을 확인하고 이것을 개성적 표현의 수단으로 활용하게 된다.

지역어에 대한 인식이 문화에 새로운 활력을 주고 다양성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지역어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반드시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지역어에 대한 관심은 특이성에서 비롯되는데 그 특이성은 차별을 낳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즉, 특이한 억양과 발음, 낯선 어휘만이 부각된다면 이는 문화로서의 지역말이 희화화된 요소로만 왜곡될 우려가 있으며 이러한 이질감은 거부감으로 바뀔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유머 한 토막을 살펴 보자.



서울 신혼 부부가 붕어빵 장사를 보고

여 : 자기야 저 붕어빵 먹고 싶어. 사 줘.

남 : 그래 자기 여기 있어. 맛있게 먹어.

여 : 자기야 이거 머리부터 먹을까 꼬리부터 먹을까?

남 : 자기는 아무렇게 먹어도 다 이뻐.

이것을 부럽게 본 부산 신혼 부부가

여 : 보소 저 붕어빵 사 주소.

남 : 뭘라꼬.

여 : 묵고 싶어서예.

(남자 마지못해 사준다.)

여 : 보소. 이거 대가리부터 묵을까예 꼬랑데이부터 묵을까예?

남 : 닌 사주도 지랄이가.



이 유머에서 부산과 서울의 신혼 부부는 대등한 비교의 대상이 아니다. 서울부부는 막 결혼한 사랑하는 사이 같아 보이지만, 부산부부는 결혼한 지 10년쯤 된 권태기의 부부인 것 같다. 부산말은 애정을 갖고 말할 때는 매우 애교스럽고 정답지만 아무 감정 없이 말할 때는 투박하고 무뚝뚝하다. 위의 유머를 다음과 같이 바꿔보면 전혀 우습지 않다.



여 : 저 붕어빵 좀 사 주이소예.

남 : 와 배고프나?

여 : 그냥 묵고싶어예.

남 : 아나, 많이 무우라.

여 : 이거 입부터 묵을까예 끄티부터 묵을까예?

남 : 니는 마 무도 이쁘다 아이가.



이처럼 부산사람이 무뚝뚝하다고 인식하는 이유는 어휘나 표현의 문제가 아니고 발음과 억양, 즉 화법의 문제인 것이다. 언어 표현의 상황적 요인을 없애버리면 실제 생활에서 사용되는 언어를 이해하기 힘들다. 부산말이 무뚝뚝하다지만 애정을 가지고 말하면 정감이 넘친다. "많이 무라"보다는 "많이 무거라"가, 이것보다는 "많이 먹거래이"가 더 정감있게 들린다.

결국 부산말은 부산 사람의 인식과 정신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특정한 요소만을 강조하거나 비교하는 것은 부산말에 대한 인식을 왜곡시키고 타언어와의 차별을 낳게 된다. 우리가 부산말을 올바르고 정확하게 이해하고 보존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는 것이다.

/ 이근열 부산대 국어교육과 외래교수


   
이근열
# 집필진

△김봉모(부산대 국문학과 교수)
△류영남(한글학회 부산지회 회장)
△김이상(한글학회 부산지회 이사)
△강우원(인제대 국문학과 교수)
△황국명(인제대 국문학과 교수)
△이근열(부산대 국어교육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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