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방송국이 자체 제작하는 로컬 프로그램이 '알짜배기 프로그램'으로 거듭나고 있다. 각 방송국에서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 지역 방송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는 지역 프로그램들은 누가 어떻게 만들고 있을까. 그 현장을 깊이 들여다봤다.


# 각국 생활현장 '날 것 그대로' 보여주기 전략

★부산MBC '좌충우돌 만국유람기'

한마디로 유쾌 상쾌 통쾌하다. 걸쭉한 경상도 사투리를 거침없이 쏟아내는 '두 남자'의 입담은 유쾌하고, 세계 각국의 화려한 풍경은 상쾌하며,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듯 구석구석을 훑는 구성은 통쾌하다.

지난해 11월부터 매주 금요일 밤 10시50분 전파를 타는 '좌충우돌 두 남자의 만국유람기'(이하 만국유람기)는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으로는 드물게 좋은 기록을 내고 있다.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은 인지도 있는 출연자를 내세워야 해 지역 방송국에서 제작하기가 녹록지 않다. 부산MBC는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역발상을 했다. 오히려 지역의 인물을 내세워 키워보자 나선 것이다. 방송에서 '날 것 그대로'를 보여주자는 '전략'도 제대로 먹혀 들었다. 가공되지 않은

부산MBC '좌충우돌 두 남자의 만국유람기'

두 남자의 모습과 관광지가 아닌 살가운 생활 풍경이 맞물리면서 시너지 효과를 냈다. 평균 시청률은 5~7%이지만 최고 9%를 기록한 적도 있다.


- 김장원 PD

"친구와 여행 가는 기분으로 봐주세요"

'만국유람기'는 인기에 힘입어 부산MBC에선 처음으로 첫 방송 후 두 달만에 팬 카페가 생겼다. 가입자는 200여 명으로, 방송이 나가자마자 바로 시청 후기가 올라온다. 시청자들의 발빠른 피드백(feedback)은 더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자양분이다.

'만국유람기' 팀은 '꼴랑' 4명. 출연하는 두 남자와 두 스태프가 전부다. 빠듯한 제작비 때문이다. 섬세함 대신 기동력을 무기로 삼은 이 팀을 이끄는 사람은 12년차인 김장원 PD다.

"한 나라를 보름 정도 다녀와요. 다녀와서 한달 반 정도 편집해 방송하고 나면 1주 남짓 있다 또 바로 나가야 하더라구요."

'만국유람기'의 최대 매력은 출연자들의 모습을 가공없이 날 것 그대로 보여준다는 것. 실제로 좌충우돌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오히려 준비를 덜 하고 나선다고 한다. 밤마다 이어지는 술판이 최고의 회의 장소라고.

"가고 싶은 해외의 여행지를 친구와 같이 여행간다는 기분으로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앞으로도 좌충우돌하는 두 남자의 모습은 계속 됩니다."


# 치밀한 구성에 부산 유일 두자릿수 시청률

★KBS부산 '시사터치 현장'

KBS부산 '시사터치 현장'

매주 금요일 오후 7시30분부터 55분간 방송되는 '시사터치 현장'은 독특하게도 말랑말랑한 시사프로그램이다. 소재는 철저히 지역 밀착형으로 택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여과없이 전달한다는 '차가운' 목표를 현장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터치해 '따뜻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 여기다 치밀한 구성으로 생동감도 놓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시사터치 현장'을 시청률 왕중왕에 올려놓은 원동력이다.

'시사터치 현장'을 이야기 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시사제작프로젝트팀(이하 프로젝트팀). 지난해 8월 KBS부산이 동남권역 제작 기지 구축을 목표로 지역 방송국에서는 처음으로 PD와 기자의 협업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탄생했다.

기자의 정보 수집력과 취재력, 그리고 PD의 기획 구성력을 묶어 시너지 효과를 노렸다. '시사터치 현장'은 그 시너지 효과가 현실이 된 셈이다.

부산에서는 유일하게 두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시사터치 현장'은 봄 개편과 함께 새롭게 거듭났다. 외부의 전문MC가 진행자로 나서고, 취재 리포터가 직접 현장의 목소리를 전하는 코너도 신설됐다.


- 권종욱 시사제작프로젝트팀장

"구성원 자발 참여… 이슈 적극 발굴"

인터뷰를 위해 KBS부산 사무실에서 만난 권종욱 팀장은 프로젝트팀이 만들어낸 지금까지의 성과물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프로젝트팀은 고정 프로그램과 함께 계기성 단발 프로그램도 적잖이 만들어 냈다. 기자 출신으로 팀을 이끌고 있는 그는 "구성원 모두가 자발적으로 참여해 다들 의욕이 대단하다"며 팀원들을 추켜세웠다. "'시사터치 현장'은 휴먼 다큐 '현장기록21'의 후속타로 만들어진 겁니다. 시사다큐멘터리 형식이지만 건조하지 않게 하는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프로젝트팀의 가장 큰 장점은 사각지대를 흡수할 수 있는 것이다. "기존의 보도·편성 시스템에서는 못하는 것을 하려고 해요. 정착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지만 수도권과 대비되는 제작기지로서 대형 이슈를 적극적으로 발굴해낼 생각입니다."


# 부산·경남의 화제사건 궁금증 풀어줘

★KNN '현장추적 싸이렌'

KNN '현장추적 싸이렌'

3년 6개월. 보통 방송국들이 1년에 두 번 개편을 단행하는 것을 감안하면 무려 6번이나 '살아 남았다'. 매주 수요일 밤 11시15분에 방송되는 '현장추적 싸이렌'(이하 싸이렌)은 심지어 6개월 만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프로그램이 허다한 풍토에서 보기 드문 장수 프로그램이다. 시청률도 5~7%를 오르내린다. 특히 서울에서도 유사한 프로그램이 만들어졌지만 시청률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다 슬그머니 없어진 것을 보면 분명 독특하다.

범죄드라마 형식의 시사 프로그램인 '싸이렌'의 강점은 깊숙이 들여다보되 지루하지 않다는 것. 단편적으로 알려진 사건을 좀 더 꼼꼼히 취재해 재연 구성을 통해 풀어낸 덕분이다. 이를 위해서 세 명의 PD는 경찰 출입기자들 처럼 구역을 나눠서 아이템을 구하러 다닌다. 그래서인지 이들이 직접 건져올린 아이템들은 건네 받은 것보다 훨씬 따끈따끈하다.

살인, 강도, 강간 등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사건을 도마 위에 올리는 것도 인기 비결 중 하나. 특히 부산과 경남에서 일어난 사건 중 전국적으로도 화제가 된 사건을 다각도로 조명해 시청자들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것도 '싸이렌'만의 장점이다.


- 배병민 PD

"수준높은 범죄 드라마 만들겠습니다"

1년 7개월 째 '사이렌'을 담당하고 있는 배병민 PD는 하루 하루가 전쟁의 연속이다. 촬영도 이틀 만에 뚝딱 해야 하고, 주말에도 나와 밤새 편집에 매달려야 한다. 또 방송이 나간 후 한숨 돌리기 무섭게 먹이를 찾는 하이에나처럼 나가 따끈한 아이템을 구해 와야 하기 때문. "예전엔 형사와 함께 동행 취재를 많이 했었어요. 그러다 피해자 인권 침해 논란, 수사기법 노출 등으로 경찰들의 협조가 줄어든 점이 가장 힘듭니다."

촬영장소를 섭외하는 것도 만만찮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가게가 범죄에 이용된 곳이라는 인식을 심어준다고 생각해 선뜻 나서지 않기 때문이다.

"시청자들이 어설픈 드라마였다면 외면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수준 높은 범죄 드라마를 보여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