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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매체 문자의 범람, 암호문 같은 불통의 시대

이건희 작가 `Rebus`전

한지에 아크릴 물감 짜서 표현

주제 무겁지만 밝은 색감 특징

  • 임은정 기자 iej09@kookje.co.kr
  •  |   입력 : 2011-05-26 20:19:07
  •  |   본지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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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작가의 'rebus' 수가화랑 제공
"몇 년 전 딸아이와 문자를 주고받는데 'ㅇㅋ'을 찍어 보내는 거예요.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어 직접 전화를 했더니, '오케이'의 축약이라면서 제가 너무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겁니다. 한 대 맞은 기분이었죠. 학습하지 않으면 문자는 그냥 이미지일 뿐, 더는 소통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는 게 충격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작가는 본격적으로 문자와 기호를 가미한 회화 및 설치 작업을 했다. 아이폰 등의 디지털 매체에서 주고받는 수많은 언어와 문자의 정보 공해를 이 시대를 사는 작가적 시각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이건희 작가의 'Rebus(글자 조합 수수께끼)' 전이 열리는 수가화랑(부산 동래구 온천동). 갤러리 벽면 전체를 여러 글자와 기호들이 뒤덮고 있다. 'ㄱ, ㄴ' 등의 한글 자음에서부터 영어 알파벳, 러시아어나 라틴어, 문자로 주고받는 이모티콘과 의미를 알 수 없는 또 다른 문자까지 수십 종의 언어가 입체감 있게 도드라지면서 벽면이나 화폭 위를 떠돌아다닌다. 마치 암호문 같다. 글자는 글자지만, 학습하지 않으면 전혀 무슨 뜻인지 알아챌 수가 없다. 언뜻 보자면 그것은 글쓰기와 그리기가 혼재된 풍경으로도 보인다.

작가는 "디지털 매체가 발달하면서 종이의 기능은 물론 문자 체계도 바뀌고 있습니다. 많은 문자나 언어가 인터넷 등을 채우고 있지만 정작 필요한 것은 없고, 있다 하더라도 공부하거나 약속하지 않으면 읽지 못하는 게 태반입니다. 언어와 문자가 범람하면서 오히려 소통할 수 없는 시대가 돼 버린 거죠"라고 말했다. 문자와 기호가 의미 전달이라는 고유의 기능을 상실하면서 단순한 이미지와 같다는 뜻이다.

이 같은 불통의 시대를 작가는, 한지를 배경으로 펼쳐 보인다. 그에게 있어 종이는 영원히 지속되는 기억이며, 반면 문자는 보다 새로운 기억을 의미한다. 작업과정은 합판에 닥종이를 발라 일주일 정도 햇볕에 말린 후 그 위에 아크릴 물감을 스무 번가량 바른다. 한 번 아크릴 물감을 칠한 후 하루 정도 말리고 다시 칠하기를 반복하면서 밑칠을 완성한 후 그 위에 그림을 그린다. 그것도 붓이 아니라 튜브나 주사기에 아크릴을 넣어서 한지 위에 가늘게 짜서 표현한다. 철사를 구부린 듯 우둘투둘하거나, 매끈한 곡선 등이 거대한 화폭 위를 빽빽히 채우고 있는 모습이 인지되지 못한 문자의 또 다른 표현이다.

작가는 "일반 캔버스와 달리 한지는 물을 머금는 특징이 있어서 물감이 한지에 스며들면서 아름다운 발색이 나옵니다. 어떻게 보면 무거울 수 있는 주제지만, 화사하고 밝은 색감으로 아기자기하게 표현하면서 쉽게 다가가게 했습니다"라고 말했다. 다음 달 5일까지 전시. (051)552-4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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