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영화 '소스 코드'의 포스터. |
돌아오는 항공편 안에서 '소스 코드'라는 영화를 보았다. 한국에서 꽤 인기를 누렸다고 회자된 이 작품은 '소스 코드'라는 타임머신을 이용하여 과거의 8분으로 돌아가 테러사건의 범인을 찾는 과정을 담고 있다. 주인공 콜터 대위는 폭파 전 8분 동안의 시간을 활용할 수밖에 없기에 여러 번 같은 시간으로 돌아간다. 매일 같은 시간이 반복되는 상황은 SF 영화는 아니지만 빌 머레이가 주연한 '사랑의 블랙홀'을 연상시킨다. 매번 같은 시간으로 돌아가 시간의 매듭을 풀려고 노력하는 과정은 '소스 코드'를 SF 액션 버전의 '사랑의 블랙홀'로 생각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이들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시간의 반복이 아니라 시간의 반복이 제기하는 문제점이다. 우리가 매번 같은 시간을 산다면 어떻게 될지를 철학적으로 고민한 사람은 19세기의 니체였다. 그는 '영원회귀'라는 사유의 이미지를 통해 우리가 삶을 반복하게 된다면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를 사유했다. 인간의 삶이 선택의 문제에 부딪히는 것은 영원회귀가 아니라 단 한 번의 삶을 살기 때문이다. 프리츠 랑의 영화 제목을 빌리자면 우리의 삶은 '하나뿐인 목숨'이다. 그렇기 때문에 '선택'은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된다.
그러나 '사랑의 블랙홀'의 필 코너스와 '소스 코드'의 콜터 대위는 매번 다른 선택을 할 수가 있다. 콜터 대위는 8분간 범인을 찾느라 동분서주하기도 하지만 지금 바로 앞에 있는 여인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기도 하고, 아버지에게 전화를 하려고 노력해 보기도 하는 등 수많은 선택의 삶을 산다. '사랑의 블랙홀'에서는 더욱 과감하다.
그런 점에서 영원회귀는 삶을 기계적인 순환으로 전락시킨다. 왜냐하면, 매일 같은 시간이 반복된다면 선택에 따른 윤리적인 책임도, 인간적인 후회도 소용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단 하나 뿐인 목숨을 지니고 있기에 신중한 선택과 윤리적 결단, 그리고 인간적인 고귀함을 추구할 수 있다. 매번 같은 삶을 산다면, 삶은 한없이 가벼워질 것이다. 밀란 쿤데라는 이러한 인간의 삶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고 불렀다. 니체의 영원회귀로 시작되는 이 소설의 서두는 두 여자 사이에서 선택할 수 없기에, 인간은 영원회귀의 존재가 아니기에 단 하나뿐인 목숨을 사는 남자 토마스의 바람둥이 기질을 대변해주고 있다. 결국, 인간의 선택, 이 모험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랑의 블랙홀'에서 기상 통보관 필 코너스는 여주인공 앤디 맥도웰을 향한 사랑을 선택한다. 그는 매번 같은 삶을 살면서 재즈 피아노도 그럴듯하게 치고, 온 마을 사람들을 돕는 선인으로 거듭 태어났다. 그것은 한 여인을 향한 사랑의 열정을 추구한 결과이자 깨달음의 결과이다. '소스 코드'의 콜터 대위는 결국 범인을 찾아낸다. 그리고 다시 한번 8분의 시간으로 돌아가기를 간청한다. 그것은 한 여인을 향한 사랑이자 인간들을 살려내고 싶은 휴머니티 넘치는 깨달음의 결과이다. 이것은 매번 같은 시간을 살게된다면, 그 속에 인간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지점은 인간적 고귀함이라고 부를 수 밖에 없는 것들임을 보여주고 있다. 주인공들은 매번 무의미한 삶이 반복되고 있는데 도대체 이렇게 살고 있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질문하게 되는 것이다.
그 결과, 삶의 의미를 지닌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것이며, 타인의 애정어린 시선을 받기 위해서는 나의 희생과 인간적 숭고미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끔찍한 테러의 기억으로 만들어진 소스 코드 속에 혹은 기상통보관 필 코너스처럼 봄이 오기를 기다리는 성촉절의 문 앞에 놓여 있다. 다음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은 인간적인 노력을 통한 놀라운 시간의 기적 속에서만 비로소 개시된다.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