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이 끝나면 으레 하는 일이 있다. 가까운 산을 찾거나 대중목욕탕에 가고 책방이나 도서관을 어슬렁거리는 일이다. 이 책도 그러다 만났다. 20년도 더 된 듯하다.
반복은 그 행위의 근본을 돌아보게 한다. 이 책은 (연습과 공연의) 반복 속에서 시간과 공간의 변화를 느끼며 갖게 되는 궁극적인 의문을 아주 재미있게 확인시켜 주는 그런 책이었다. 지구가 포함된 이 은하계는 빛의 속도(초속 29만9000㎞)로 가로지르는데 10만 년이 걸린다. 그 안에 수천억 개의 별이 있고 그런 은하수가 또 수천억 개 있으며, 우리 사람은 그런 한 개 별 속 수천 억 종족 중 하나다. 양자역학은 '1㎝의 100만분의 1의 100만분의 1' 규모의 현상들을 다루고 있다. 또한 지금 우주의 팽창속도를 역으로 보면 137억 년 전쯤에는 지름이 제로인 참으로 작고 작은 구에 불과했단다.
무엇보다 이 책을 읽는 재미는 심리를 물리의 법칙에 적용해 나만의 가설을 세워보는 일이다.
우주의 근본물질이 입자가 아니라 끈이라는 이론 대한 흥미(내가 꽃이라 불러 꽃이 되듯이 내 마음이 가 닿아야 너든 나든 존재해지는 것 아니겠는가), 모든 물질은 에너지이며 에너지가 크면 시공간은 휘어진다는 중력이론이나 상대성이론(우리는 무대 위에서 에너지의 크기에 따라 시공간의 변화를 얼마나 쉬이 느끼는가), 원자핵의 바깥쪽 전자가 궤도를 핵 쪽으로 다가가면 에너지가 발산되고 가시광선으로 보인다는 전자기력(인간이 내재적 힘을 발휘할 때 그에게서 후광이 발한다고 하지 않는가.
참고로 히로시마를 초토화한 원자폭탄은 28g도 안 되는 물질이 전자기파로 변환 된 힘이다) 등등.
어린 시절 해 저무는 교정에 앉아 아인슈타인을 들먹이며 친구와 함께 저녁별 너머 먼 세계에 대한 꿈을 나누던 시절이 있었다.
상급학교로 진학하며 점차 수학과 물리 과목에 어처구니없이 약해졌으니 이제 와서 과학에 흥미를 느낌은 의외다. 다만 나이가 문자의 본래 모습을 보게 하는 건가 싶어 새삼스럽다.
이 책을 세 번 정도 봤지만 읽고 나서 기억에 잘 남지는 않는다. 사실 지구가 펑퍼짐하거나 둥근 것을 안다고 지금 내 삶이 달라지는 건 없다. 하지만 너무나 거대한 우주의 너무나 작은 물질의 법칙이란 것이 바로 지금 나를 만든, 나를 둘러싼 법칙들과 공유돼 객관화·입체화 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즐거움이었다.
시공을 확장해 놓고 통일된 합일점을 향해 무한하게 지향하거나 찬란하게 산화하는 예술적 체험과도 유사함이 이 책의 내용일 수 있다. 물리학이 주는 관찰이나 사고의 폭이 예술향유 감각의 또 다른 표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나만의 가설일 수 있지만) 상상력과 복선들의 가시화, 즉 깊이와 넓이를 채워 만족시켜 가는 즐거움이다.
우주는 어떤 전율로 태어났을까. 나는 이 한없는 우주의 팽창과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일까. 연기(演技)의 비밀이 곧 우주의 비밀은 아닐까. 인간이야말로 이 우주의 통합된 의문 그 진수인 건 아닐까. 관점의 전환은 새로운 발상을 낳고 작게는 사람을 쉬게 해준다.
연극배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