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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즐거움] 눈으로 본 세계를 사진 찍듯이 표현…이 얼마나 명쾌한가 /김해성

외면일기 - 미셀 투르니에 지음·김화영 옮김/현대문학/1만1000원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2-03-09 20:46:24
  •  |   본지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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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투르니에는 그림그리기를 좋아하는 네 살 난 아이에게 글쓰기를 가르쳐 주려고 편지 몇 통을 베끼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 아이는 '쓰는 것'이 아니라 '그리는 것'이 아닌가. 그는 이 아이에게서 '글'과 '그림'의 차이가 없는 서예의 의미를 깨닫는다. 그는 만나는 어린이들에게 매일 공책에다가 몇 줄의 글을 써보라 권한다. 그러면서 자기의 내면 정신 상태를 향해서가 아니라 사람, 동물, 갖가지 사물이 가득한 외적인 세계로 눈을 돌린다면 글을 더 잘 쓸 수 있고 사진 작가가 하나의 사진이 될 수 있는 장면을 포착하듯이 풍성한 기록의 수확을 얻게 될 것이라는 다짐도 잊지 않고 한다.

투르니에의 산문집 외면일기는 지리학자처럼 실제로 여러곳을 여행하며 자료를 수집하거나, 지금도 붙박이처럼 살고 있는 자신의 마을에서 생활하며 메모한 것을 다시 닦고 문질러 글로써 광택을 낸 다음 그 모두를 열두 달로 묶어 편집한 일기다. 그는 오래 전 출간된 '로빈슨 크루소'를 20세기에 새롭게 패러디한 소설 '방그르디, 태평양의 끝' 을 써서 모국인 프랑스보다 해외 구석구석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

소설이 그러하듯 투르니에는 외면일기를 통해 눈으로 본 시골 풍경과 농부들의 바깥일 등 지극히 외면적인 사실에 오히려 살아있는 생생한 내면적인 생각이 가능함을 마치 한 장의 사진 장면처럼 쉽고 명쾌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는 자신을 비추는 거울을 보듯 '너 자신을 알라'고 한 소크라테스의 무거운 말을 슬쩍 비켜나, 그 거울을 문밖으로 들고나가 거기서 마주친 사람들, 동물들은 물론 풍경까지 비추어보면서 우리들 자신 속에 잠재해 있는 또 다른 생경한 '타자'를 보게 한다. 그의 외면일기에는 19세기 거울이라곤 본 적이 전혀 없었던 시골 부부의 일화가 삽화처럼 소개되고 있다.

시골 부부의 집에 하룻밤 묵었던 부유한 여행자가 두고 간 가방 속에서 우연히 거울을 발견한 남편. 그는 거울 속에서 죽은 아버지의 얼굴을 보고 너무나 놀란다. 빤히 그를 쳐다보는 아버지의 눈가에 원망하듯 눈물이 고여 있는 것이 아닌가. 자신과 심한 불화로 화병으로 죽은 아버지. 남편은 거울을 서랍 속에 집어넣고 황급히 밖으로 뛰쳐나간다.

그 때 이 광경을 본 아내가 서랍을 뒤져 거울을 보고는 절망감에 휩싸여 이렇게 외친다. '이 이가 바람을 피우고 있군, 게다가 늙고 추한 계집하고!' 투르니에는 이 삽화 말미에 이들 부부에게 어린 아들, 딸이 있었다고 부연하면서 이 아이들 역시 차례로 각자 거울을 보게 된다는 사실만 적고 있다. 삽화에서 투르니에는 이들 부부나 자녀가 동시에 같이 거울을 보며 서로가 타자로 보게 되는 경우를 암시조차 하지 않고 있다.

어느날 자신의 저택에 우연히 날아든 박쥐와 때마침 거실 외진 구석에서 삐죽 나온 생쥐를 동시에 보고 투르니에는 박쥐를 본 생쥐의 간절한 기도를 재빨리 메모로 남긴다. '오, 나의 천사여!' 이 얼마나 사진 장면으로도 재생하기 힘든 투르니에다운 명쾌한 표현인가.

부산대 예술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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