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는 인간은 이성적 존재이기 때문에 스스로 도덕법칙을 실천할 수 있는 실천적 의지, 즉 자유의지를 가진다고 말한다. 인간은 또한 자유의지를 가지기 때문에 욕구에 위배되는 행위를 할 수 있으며 이러한 행위에 대해 책임을 질 의무를 지닌다. 여기서 두 가지 의문을 제기하고 싶다. 우리는 진정으로 자유의지를 갖고 있는 것일까. 또 만약 자유의지를 갖고 있지 않다면, 우리의 삶은 가치가 없어지는 것일까.
이 책의 주인공은 신 후보생인 미카엘 팽송이다. 그는 최고의 신이 되기 위해 다른 신 후보생들과 경쟁하며 하나의 세계를 지배하는 게임에 참여한다. 동시에 모든 것을 만들어낸 진짜 창조자를 찾기 위해 험난한 모험에 뛰어든다. 팽송은 자신이 지배하던 세계로 들어가보기도 하고, 자신들에게 게임을 제안한 신의 궁전에 올라가보기도 한다. 끊임없이 위로 올라가려고 했던 팽송의 머리에 닿은 것은 바로 책의 '페이지'였다. 약간만 힘을 줘도 찢어지는 종이 조각이 팽송에게는 결코 뛰어넘을 수 없는 두꺼운 장벽이었다. 자신의 생각이라고 여겼던 모든 것들이 그저 책에 쓰여진 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그에게 삶은 의미가 있을까. 그가 아무리 글의 줄거리에서 벗어나려고 애를 쓰려해도, 그 행동 역시 글쓴이가 의도한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면, 과연 그의 삶은 가치 있는 삶일까.
이 책에 따르면 첫 번째 의문에 대한 답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세상은 마치 '라자냐'와 같다는 말이 기억난다. 라자냐는 겹겹이 된 층으로 이루어진 이탈리아 음식이다. 내가 사는 세상 아래에 하나의 세상이 있고, 그 아래에 또 세상이 있다. 내가 사는 세상 위에 하나의 세상이 있고, 그 위에 또 세상이 있다. 마치 마주보고 있는 거울처럼 끝을 알 수 없는 세상이다. 지금 이렇게 글을 쓰는 나의 행동도 내 의지가 아니라, 나에게 생명력을 부여하는 어떠한 상위의 '존재'가 나에게 글을 쓰게 하는 것일 수 있다. 그 상위의 '존재'는 전지전능한 '신'일 수도 있지만, 우리 옆에 살아 숨쉬고 있는 '사회 관습'일 수도 있다.
결론을 내기 어려운 첫 번째 질문에 비해 두 번째 질문은 좀 더 가치 있고 답하기도 쉽다. 나 자신이 소설 속 인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하자. 허무주의에 맞닥뜨려 행복하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삶을 살게 된다면 그것이 의미 있는 삶일까. 아니다, 소설 속의 한 인물로 그 삶을 마음껏 누리고 즐기는 것이 훨씬 멋있다. 가끔 내 인생이 원하는대로 풀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내 의지가 아니라 '글쓴이' 당신의 책임이려니 탓할 수 있으니 오히려 좋지 않을까. 가끔 신에게 소원을 빌듯 '글쓴이'에게 내가 원하는 내 모습을 요청하면 되니 이보다 편할 수 있을까.
사람은 온전히 자유의지대로 무엇인가를 결정하기 어렵다. 주위 환경의 영향을 받고, 또 영향을 준다. 휴대전화를 하루 종일 품고 살면서, 어떻게 모든 것을 내 의지대로 하기를 원할까. 삶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짜증내지 말자. 온몸으로 휩쓸리면서 삶을 즐기는 게 어떨까.
아트뱅크코레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