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클레오파트라'의 한 장면. 카이사르(시저)가 기원전 48년 클레오파트라의 남편인 프톨레마이오스 13세와 전투를 벌인다. 카이사르 군대가 항구에 정박해 있던 배들에 불을 지르자, 이 불길이 알렉산드리아로 옮겨 붙으면서 책(파피루스 두루마리)들이 소실된다. 이에 클레오파트라가 카이사르에게 화를 내면서 항의한다.
사라진 도서관의 저자인 루치아노 칸포라는 논란이 많은 이 대목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당시 항구 근처에 있던 한 건물에 우연하게도 양질의 두루마리 4만 개가량 보관돼 있었다. 왕국의 본관 도서관격인 무세이온은 궁전 경내에, 분관격인 세라피움은 궁전과 떨어진 도시 남쪽의 세라피스 신전에 있었다. 궁전은 바닷가 절벽 위에 있었으므로, 이 전투에서 소실된 두루마리들은 궁전의 책이 아니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탈리아 고전시대를 연구하는 고전 철학자로 326편의 고대 문헌 등을 뒤져 이 책을 썼다. 공식적인 세계 최초의 고대 도서관으로 일컬어지는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설립된 경위와 역할, 그리고 사라진 이유를 고증하고 있다.
알렉산드리아는 아프리카와 유럽 대륙, 중동의 교차점이라는 지리적인 특성과 아울러 당시 세계 최대 항구 도시였다. 프톨레마이오스 1세(기원전 367~기원전 283)가 아들의 교육을 위해 무세이온을 설립했고, 프톨레마이오스 2세는 세상에 있는 모든 책들을 모으려고 했다. 그는 알렉산드리아에 기항하는 선박에서 발견되는 모든 책을 필사하도록 했으며, 원본은 보관하고 필사본을 주인에게 넘겼다. 그렇게 모은 책이 70만 권의 두루마리였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수많은 자료를 수집하고, 필사하고, 그리스로 번역했다. 당시의 도서관은 별도의 건물이 있었던 게 아니라 건물의 회랑과 벽에 책장이 설치된 형태였다.
양피지 책을 만든 소아시아의 페르가몬 도서관이 알렉산드리아 도서관과 경쟁하듯 장서의 수를 늘리기 위해 원전을 위조했다는 이 책의 내용도 재미있다. 당시는 책의 소장이 연구와 교양을 위한 목적도 있었지만, 통치와 왕국의 과시용으로 이용되기도 했던 것이다.
이 책은 두 부분으로 나뉘어 기술돼 있다. 앞부분에서는 그리스의 역사가인 헤카타이오스가 람세스의 무덤을 방문하는 이야기를 통해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형태에 대해 설명한다. 뒷부분에서는 알렉산드리아의 책과 필사가들, 학자들의 모순적인 주장에 대해 말하고 있다.
저자는 또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사라지게 된 이유에 대해서도 여러 문헌을 분석해 이야기 한다. 서기 389년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테오필루스가 로마 제국의 황제 테오도시우스의 지시를 받아 세라피움을 파괴한다. 또한 이슬람 군대의 대장 암르가 술탄의 명을 받아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책을 모두 불태운다.
하지만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1600년 만에 부활했다. 이집트 정부가 주도하고 유네스코와 여러 나라의 도움으로 2002년 최첨단 건물을 세웠다.
시인·동아대 홍보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