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써 말이 많으니 말을 말까 하노라'. 의사소통의 수단인 말이 말다툼이 되고 종내는 소통과는 무관한 말장난으로 변질하는 현상을 우려한 이 말은 글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말과 글이 지역마다 다름은 언어소통에 따른 기본적인 사고방식의 차이 때문이 아닐까. 경험에 의한 귀납적인 사고방식이 지배적인 서양의 경우 '이다. 아니다', '이것 아니면 저것' 등 선택과 가림이 분명한 표현을 즐겨서 객관성과 명료함이 전제된 언어에 대한 절대적 믿음이 우선한다.
여기에 반해 순수한 사유에 의한 연역적 사고방식이 우선하는 동양은 '글은 말보다 못하고 말은 뜻보다 못하다'는 표현에서 보듯 언어에만 의존한 의사의 완전 소통에 회의적이다. 따라서 '언어최소주의'라 할 정도로 '명상'과 '마음'이 위주가 돼 실질적 언어소통이 외면되고 있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염화시중의 미소, 이심전심, 무위자연에서 비롯된 불립문자, 언어도단, 비명론(非名論) 등이 그 예다.
'커피 스푼으로 내 삶을 재어왔다'는 엘리엇의 시구. 커피 한잔을 30㎝ 앞에 두고 커피 스푼을 입술로 가져가기까지 한 여인의 손동작에서 30년 삶의 여정을 읽어내는 서양 시인의 통찰력을 상상해 볼 수 있다. 동양에서는 오래전부터 회자돼 온 '왕희지의 일필휘지(一筆揮之)에 인생 60을 읽는다'는 쉽고도 어려운 말이 있다. 묘하게도 필자에게 이 말은 문자 아닌 모양으로 모든 뜻을 다할 수 있다는 '입상진의'(立像盡意)에 의한 공자·맹자의 언어소통관을 상기시킨다.
서화일체와 다름없는 서예의 일필휘지는 붓놀림의 행위까지 잠재돼 있다. 결과적으로 입상진의는 신언서판(身言書判)과 다름없어 유교에서 중시하는 총체적 '사람됨'(仁)의 척도가 된다. 자신을 우선하는 예(藝)와 타자를 배려하는 예(禮)의 가치를 동일시하는 유가에서는 인간관계를 앞세워 자신의 밖이 되는 가족, 사회, 국가로 관계의 범주를 점차 확대해 관계 속에 이루어지는 적절한 조화를 중시한다. 그것은' 배우고 때로는 익히니 즐겁지 아니한가'는 쉬운 말로 풀이되기도 한다.
외예내예(外禮內藝)를 통한 이러한 '사람됨'의 실천은 한편으로 예(禮)로써 구성관계에서 조화로운 '나눔'의 기능을 수행하며 한편으론 악(樂)을 포괄하는 예(藝)로써 자연스러운 '통합'의 기능을 수행해 끝내는 최선의 가치가 되는 '즐거움'에 이르게 한다.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통합의 기능 수행에 음악을 강조하는 공자의 혜안이다. 그는 말한다. 말을 하고 실천하는 것이 예(禮)이고 그것을 즐기는 것이 음악이다.
그래서인지 저자는 책의 끝에 이승을 떠날 때가 된 스승과 제자 사이에 나눈 대화를 입상진의에 의한 '禮&藝'의 극적인 표현 사례로 소개하고 있다. '선생님, 제자에게 남기실 가르침이 없습니까'. '고향을 지나거든 수레에서 내려라. 알겠느냐'. '고향을 잊지 말라는 말씀이시군요'. '높은 나무 아래를 지나거든 종종걸음으로 가거라. 알겠느냐'. '노인을 공경하라는 말씀이군요'. '내 혀가 있느냐'. '있습니다'. '내 이가 있느냐'. '없습니다. 강한 것은 없어지고 약한 것은 남는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럼 세상의 일을 다 말했느니라'.
부산예술대학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