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공부하는 조카가 어느 날 책 한 권을 나에게 선물로 주었다. 제목이 여자의 탄생이었다.
이 책은 우리의 일상적인 모습 속에 담긴 성차별적인 요소들을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풀어낸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쳐왔던 성차별적 요소들을 조목조목 짚어낸다. 또한, 남녀평등이 무엇인지 철저하게 보여주는 책이다. '정숙한'이라는 형용사가 남성을 수식하지 않는다는 것, 부인은 남편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면 안 된다는 것, 남녀 아이에게 기대하는 점이 다르다는 것 등 평소 아무런 생각 없이 하던 말과 행동이 모두 사회에 의해 학습되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내 모습을 되돌아 보았다. 난 그래도 참 행운아였던 것 같다. 사실 난 '여성적'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멀다. 4남 4녀 가운데 막내로 태어난 나는 치마를 입은 기억이 거의 없다. 오빠들 틈에서 자라 그런지 남자들보다 축구를 잘했고 딱지치기, 구슬치기 등 남자애들이 즐기는 놀이에만 관심이 있었다. 고무줄놀이나 인형놀이는 내 관심사가 아니었다. 남자애들이 하는 모든 놀이를 통달하여 동네 골목대장을 자처했다. 적어도 내가 중학생이 되면서 가지고 있던 딱지와 구슬을 동네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기 전까지는 그랬다.
한국에서 여성으로 사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여풍'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오늘날 여성의 지위는 많이 상승했고, 여성의 취업비율도 증가하는 추세이며 대학에선 여성 총학생회장도 나온다. 그러나 저자는 아직도 우리나라 여성의 지위가 70개국 중 63위에 머물러 있다고 말한다. 직장 내 커피 심부름을 여성에게만 시키는 것은 사회 자체가 남성 중심적임을 확실히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난 사실 차별을 차별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려니 하며 오히려 그 차별을 특권으로 생각해 왔다. 여성이니까 무거운 것 들지 않고, 여성이니까 데이트 비용 덜 내고, 여성이니까 팀을 책임질 필요도 없었다. 여성으로서 받을 수 있는 배려와 눈길을 즐겼다. 어딘가에 의지하고 종속된 것이 익숙하고 편안했다.
그렇게 받은 배려들이 차별을 정당화하는 데 쓰인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서였을까. 그렇게 차별을 차별처럼 생각하지 않았던 나에게 내가 딛고 서 있는 이 견고한 틀을 깨고 나가는 것은 거북한 일임은 당연했다. 어린 시절부터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정해진 행동을 해야 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 이제는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나에게 그 틀을 부술 용기가 있느냐고 물어본다면, 선뜻 대답하기가 어렵다. 열심히 치열하게 고민해 보았다. 그렇지만 어린 시절부터 열심히 뛰고 놀고,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했던 편안한 이곳을 떠나 버릴 수 있을까.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럽지만, 용기 있는 그 누군가가 답답하고 억눌린 이곳을 아주 시원하게 깨부수어 주기를 소망한다.
아트뱅크코레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