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무릎 수술을 하고 목발 생활을 하고 있다. 목발이 다리 역할을 대신 하기는 하나 항상 손으로 목발을 잡아야 하기에 손을 못 쓰게 된다. 즉 다리가 불편하니 손까지 못 쓰게 되었고, 손과 발을 못 쓰게 되니 일상생활 전체가 불편하게 되었다. 더욱이 마음까지 심란하다. 어느 한 부분이 고장나면 그 고장이 모든 부분에 연쇄적으로 영향을 주게 되고 받게 되는 것 같다. 또한 육신의 불편이 정신의 불편으로 이어지고, 나 개인의 불편이 주위 인연들의 불편으로 이어진다는 사실도 발견하였다.
목발 생활이 어느덧 두 달이 되어 가고 있다. 수많은 심경의 변화가 있었다.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서 보도로만 접했던 장애우들의 인간승리의 가능성도 이해가 되었다. 반대로 그 어려움에 좌절하며 우울감에 휩싸여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분들의 심경도 이해가 되었다. 특히 공부심 없이 비교하는 마음은 저절로 비하심이 되고 자학심이 되며, 공부심을 갖고 비교하면 다행심이 되고 자애심의 희망이 된다는 깨달음도 얻었다. 또한 희망과 절망이 나눠지는 분기점이 한 마음 차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원불교 교조이신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원불교는 마음 쓰는 법(用心法)을 가르치는 종교라는 점을 매우 강조하셨다. 또한 "원불교에서는 무엇을 가르치고 배우느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하오리까"라는 제자의 질문에 "원래 불교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되는 이치를 스스로 깨쳐 알게 하는 교이니 우리 원불교에서도 그 이치를 가르치고 배운다고 하면 될 것이요, 그 이치를 알고 보면 불생불멸의 이치와 인과보응의 이치까지도 다 해결되나니라"라고 하신 법문이 있다.(대종경 교의품 27장)
일체는 마음의 짓는 결과(一切唯心造)라는 말은 더 깊은 뜻도 있겠지만 우리가 흔히 쓰는 '마음먹기에 달렸다'라든가 '생각하기 나름이다'라는 말과 비슷하다. 마음을 잘 먹는 공부와 마음을 잘 쓰는 공부가 바로 원불교에서 강조하는 마음공부이다. 마음가짐을 바르게 하고 상황 상황에 맞게 마음을 잘 써서 참으로 행복한 삶을 살자는 것이 원불교의 가르침이다.
장애는 불편함일 뿐 괴로움도 아니고 불행은 더더욱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편함은 그냥 불편함일 뿐이다. 불편함을 통해서 짜증이 날 수도 있지만 더욱 깊은 감사심도 생길 수가 있다. 불행한 일을 당해서 파탄이 나는 가정도 있지만 그 불행으로 인해 더욱 화목해지는 가정도 있다. 두 달간 걷지 못하는 불편함을 겪으면서 걷는 행복을 찾았다. 앞으로는 걸으면서도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를 외치며 살 수 있을 것 같다. 아니 지금 당장 이대로의 생활에도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를 외치고 싶다.
고난과 역경은 우리를 힘들게 하지만 그로 인해 더욱 큰 성공과 행복을 거둘 수 있다. 또한 선과 악이 모두 나를 깨우쳐주는 스승이라는 말(善惡皆吾師)이 있다.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세상의 모든 어려움과 고통은 우리를 괴롭히는 악마가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온몸으로 절규하며 깨우침을 주는 부처님이시다. 세상은 온통 부처님이시고 마침내 부처님이시며 온통 은혜이시고 마침내 은혜이시다.
원불교 부산진교당 주임교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