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성탄대축일로부터 정확히 40일째 되는 날로서 '주님봉헌축일'이다. 예수가 비록 정상적인 부부 관계에서 태어난 아기가 아니라 할지라도 이스라엘의 모든 부모는 첫아들을 하느님께 봉헌해야 하는 봉헌예식과 산모의 부정을 벗는 정결예식을 치러야 했다.(탈출기 13장, 민수기 18장) 산모는 아들을 낳은 경우, 1주간 부정기간과 33일의 정결기간을 보내고 40일째 되는 날, 딸을 낳은 경우에는 2주간 부정기간과 66일의 정결기간을 보내고 80일째 되는 날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물을 바침으로써 부정을 벗고 정결을 찾아야 했다.
루카복음은 산모인 마리아의 정결과 첫아들인 예수의 봉헌예식을 한데 묶어 같은 날에 치러진 사건으로 보도하고 있다.(2,22-24) 이는 모세의 율법을 준수하는 동시에 아기 예수를 예루살렘 성전에 등장시킴으로써 그를 '자기 궁궐(성전)에 나타나는 상전'(말라 3,1)으로 부각하는 이중효과를 노리는 의도로 추정된다. 이로써 루카는 메시아의 도래를 기다리던 이스라엘에 종지부를 찍는다. 복음은 마리아의 정결과 예수의 봉헌이라는 율법준수의 틀을 통하여 예수를 이스라엘이 기다리던 메시아로, 하느님이 현존하는 예루살렘 성전의 주인으로 선포한다.
예수를 메시아로 선포하는 복음의 의도는 실제로 자신을 봉헌하여 밤낮으로 성전에서 기도하며 이스라엘의 구원을 기다리던 두 예언자(시메온과 한나)를 통해 공적으로 인정된다. 예언자 시메온은 첫눈에 아기 예수를 메시아요, 이스라엘과 이방인 모두의 구세주로 알아본다. 물론 시메온의 예지는 성령에 따른 것이다. 그는 아기 예수를 두 팔에 안아 들고 하느님께 찬양을 드리고, 마리아에게는 예언의 말씀을 들려준다. 예언의 전체 내용은 예수의 정체성에 관한 하느님의 자기계시다. 따라서 시메온이 자신의 예지를 통하여 예수를 메시아로 통찰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예수를 통하여 메시아로 드러난 것을 자신의 눈으로 본 것이다. 볼 것을 본 시메온은 이제 평안히 눈을 감게 되었고 메시아이신 예수는 이방인의 빛이요 이스라엘의 영광으로 우뚝 선다.
예언녀 한나는 일찍이 남편을 잃고 황혼이 되도록 과부로 지내며 밤낮없이 단식과 기도로 하느님을 섬겨온 사람이다. 과부로서의 한나의 삶은 구차하고 가난하기가 이를 데 없었을 것이고 그래서 경건했을 것이다. 가난한 자가 하느님을 먼저 공경하고 두려워한다. 한나는 오늘을 보기 위해 가난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메시아의 구원을 기다리던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자로 묘사된다. 이러한 그녀가 시메온의 팔에 안겨있는 아기 예수를 메시아로 알아보았고, 시메온의 예언을 밖으로 배달한다. 루카는 한나가 어떤 말로 사람들에게 메시아의 도래를 알렸는지 밝히지 않고 있다. 그것은 시메온의 예언이 어떤 말을 덧붙일 필요 없이 그 자체로 완벽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메온의 말대로 예수의 도래는 세상에 구원과 평화를, 빛과 영광을 가져온다. 하지만 반대와 갈등, 어둠과 고통으로 가득 찬 불완전한 세상이 이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자신의 운명을 예수에게 걸어야 한다. 먼저 예수가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하여 자신을 세상에 던졌고, 다음으로 마리아가 자신을 바쳐 예수와 함께 고통의 길을 걷는다. 마리아는 이렇게 자기에게 약속된 놀라운 하느님의 계획을 하나씩 배우고 깨달아간다. 마리아가 고통을 배우는 숙제를 하는 동안, 예수도 메시아로서의 자의식을 키워가야 하는 숙제를 받았고, 세상은 이 예수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할 숙제를 받았다.
예수가 하느님의 은총 속에서 육적인 건강과 영적인 지혜를 갖춘 성인으로 성장하는 것은 예수 스스로 메시아임에 대한 인식과 의식의 성장을 의미하듯이 세상 또한 메시아와 함께 자신을 성장시켜야 한다. 그때까지는 예수도 세상도 시간이 필요하다. 봉헌을 상징하는 촛불이 자신을 태우지 않고서는 어둠을 밝힐 수 없듯이, 이 시간은 모두에게 성장을 위해 자신을 태우는 시간이다.
천주교 몰운대 성당 주임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