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껑 없는 고요가 이글거리고
텅 빈 내용이 이글거리는
고비 사막이
아무것도 씌어지지 않은 채
아직도 내 가슴 바닥에 드넓게 펼쳐져 있다
-시전문지 '이상 2012년 가을호' 에서
▶최승호= 1954년 강원도 춘천 출생. 시집 '눈사람' 등.
여름날 이집트 사막에 갔었다. 사막의 막막함과 뜨거움이 두려우면서도 신비스러웠다. 안방과 서재의 책장에 책이 가득하다. 더는 꽂을 곳이 없어 바닥에 차곡차곡 쌓아둔다. 큰 맘 먹고 장만했던 앤티크 책상 위에도 온통 책들이 그득히 쌓여 있다. 책이 제공하는 지식도 소중하지만 왠지 허전하다. 저 책들을 몽땅 버리고 싶은 충동을 가끔 느낀다. 가슴 한가운데 있는 그 넓은 사막을 들여다보는 것이 오히려 더 낫지 않을까? 지식이 아닌 지혜로 충만한 삶에 목마르다. 삶과 죽음을 관통하는 지혜는 어디에서 오는가? 평소에 책을 거의 읽지 않아도 지혜로운 사람을 만나면 신기하다. 이글거리는 책이 아닌 오래된 영혼의 심연에서 발산되는 빛 때문이리라. 김혜영·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