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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대 신부의 복음단상 <45> 실상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루카 10,42)

예수님의 말씀을 경청하는 것이 우선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3-10-11 19:35:39
  •  |   본지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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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스페인 궁정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가 그린 마르타와 마리아(1618).
주일에도 출근해야 하는 아버지가 있었다. 가족은 마침 주일에 생일을 맞이하는 아버지를 축하하기 위해 저녁 계획을 세웠다. 엄마는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기로 했고, 큰아들은 집 안 청소를 하고, 딸은 생일 케이크를, 작은아들은 카드를 직접 그려 준비하기로 했다. 드디어 생일 아침, 아버지는 늦잠 자는 아이들의 배웅도 받지 못한 채 출근했다. 점심 무렵부터 가족 모두가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아버지는 그때 집으로 돌아왔다.

부엌으로 가서 아내에게 물 한 잔 달랬더니 바쁘다고 직접 갖다 마시라고 했다. 딸은 케이크를 사러 나갔고, 청소하고 있던 큰아들더러 평소에 먹던 약봉지 좀 찾아오라 하니 아버지가 직접 찾아보라 했다. 힘이 빠진 아버지는 2층으로 올라갔다. 작은아들에게 가서 아빠랑 얘기 좀 하자 했더니 지금은 바빠서 안 된다고 했다. 아버지는 침대에 가서 누웠다.

저녁이 되어 모든 준비가 끝났다. 집안은 반들반들하고, 맛있는 음식과 케이크와 카드도 준비되었다. 엄마와 아이들은 2층으로 올라가 잠든 아버지를 깨웠다. 아무리 흔들어도 깨어나지 않는 아버지, 그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가족은 망연자실!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가?

오곡백과가 풍성한 결실의 계절을 맞이하면서 누구나 한번은 자신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게 된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애써온 땀방울이 맺혀있고, 행복을 위한 부단한 노력이 서려 있으며, 기쁨과 슬픔, 만족과 불만, 감사와 원망, 진보와 퇴보의 발걸음이 뒤섞여 있음을 본다. 물론 여유를 가지고 가만히 앉아 뒤를 더듬어보는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축복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그저 바빴다고 말하고, 지금도 그는 바쁜 사람 축에 든다.

한번은 예수님이 제자들과 길을 가다가 어느 마을에 들렀는데, 마르타가 그 일행을 자기 집에 모셔 들였다. 통상 손님을 자기 집에 초대하면 처음에는 주인이 손님에게 '베푸는 자'가 된다. 그러나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그 위치가 바뀌어 손님이 주인에게 '베푸는 자'가 된다. 주인이 손님으로부터 '받는 자'가 되는 것이다.

예수님과 그 일행을 맞아들인 마르타는 부엌을 오가며 손님 접대와 시중에 여념이 없는데, 그의 동생 마리아는 예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여기서 마르타는 '주는 자'로 마리아는 '받는 자'로 주목받는다. 베풀기만 한다고 생각하는 마르타는 화가 나서 받기만 하고 있는 마리아를 꾸짖어 달라고 예수님에 청한다. 하지만 예수님은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고 하시며 마리아가 더 좋은 몫을 택했다고 말씀하신다.

전통적으로 교회는 '받는 자' 마리아의 태도에서 관상적 모범을, '주는 자' 마르타의 태도에서 활동적 모범을 찾아냈다. 관상과 활동, 이 둘은 동시에 행할 수 없는 덕목이다. 그렇다고 이 둘이 별개의 것이 될 수는 없다. 관상이 없는 행동은 생각이 없는 행동과도 같기 때문에 임의나 무작위가 될 수 있고, 행동이 따르지 않는 관상은 공상이나 허상에 머무를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관상과 활동은 적절히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더 적극적인 조화가 필요하다.

하지만 무엇이 더 필요한지를 깨달아야 한다. 그것은 먼저 관상하고 나중에 행동하는 것이다. 먼저 행동하고 사고하는 것보다 먼저 사고하고 그다음에 행동하는 편이 더 낫다는 말이다. 주고받는 것으로 말하자면 먼저 받고, 그다음에 주라는 것이다. 모두가 아버지를 위해 무언가 베풀려고만 하다가 정작 아버지로부터 아무것도 받지 못한 식구들이 되지 않도록 말이다.

천주교 몰운대 성당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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